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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Dec 05.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44

아마추어 01

연수는 상당히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 아이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시청해보면, 물론 내가 그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학생치곤 상당히 공을 들인 편집이 돋보인다. 특히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하는 걸 들으면 화면을 보지 않더라도 그냥 틀어놓고 듣고 싶어지는 맛이 있다. 옛날에 가수 성시경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끝인사로 '잘 자요.' 했던 그 달달하고 나긋나긋한 톤처럼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게임 유튜버들은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적진을 뛰어다니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시범적으로 사용해 보일 때 상당히 호전적인 어법을 구사하곤 하는데, 연수의 채널은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시청자들을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근데 얼굴은 안 나오던데?"

"가끔 라이브 방송할 때만 조금씩 나와요."

"연수 라방하면 진짜 빵빵 터지는데!"

"야, 너 지난주에 라방하고 21만 원 벌었다며, 그 썰 털어봐."

"어머, 돈도 벌어?"

"연수 은근 벌어요, 유튜브로."

"말 그대로 유튜버네. 대박."

"별로 대박은 아니고요. 그냥 재미로요."

깊은 속눈썹이 수줍게 깜빡거렸다. 라방은 참 볼 만하겠다. 연수는 하얀 피부에 큰 눈, 갸름한 턱선을 가진 귀여운 얼굴이다. 이런 소년이 예쁜 말투로 게임을 중계하며 신중하고 차분하게 전투를 이끌어가면 특히나 소녀 게이머들이 즐겁게 방송을 시청하고 '구독'과 '좋아요'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몇 명이나 보고 좋아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얼마나 게임을 잘하고 많이 해야 게임으로 방송을 만들 수 있는 걸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 아날로그식으로 삐그덕거리며 살아온 나로서는 이렇게 게임으로 유튜브 찍고 돈 버는 삶의 방식마저 여전히 낯설고 신기하다. 진짜 유튜브로 돈 버는 사람이 있네? 하고.




연수는 무심한 척했지만, 사실 꽤나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매일의 조회수, 매일의 댓글들, 혹여나 누군가 눌렀을까 봐 가슴 졸이는 '싫어요'의 숫자 같은 것들. 언젠가부터는 댓글창을 없앴다. '게임도 못하는 주제에.'라든가, '쌉 레전드라고? 저렇게 현질하면 누군들?', '별 거지 같은 플레이.'라는 식의 악플이 달리는 날엔 그냥 게임이고 채널이고 다 접고 싶다. 친구들은 뭘 일일이 신경 쓰느냐고 했지만, 마음 여린 연수는 악의 넘치는 시청자들의 비웃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주 슬럼프에 빠지곤 했다. 그래도 게임만큼은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혼자 게임하면서도 어느새 중얼중얼 상황을 중계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개성 있는 플레이로 친구들의 환호를 받다 보면 점점 방송에 대한 욕심도 커져만 갔다. 




그렇다고 최강 게이머냐, 그건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적당히 같이 노는 느낌으로 영상을 찍을 뿐이다. 처음엔 구독자 6명으로 시작했던 채널이 지금은 1여 년 만에 4천 여명으로 늘었다. 아직 대단한 건 아니다. 잘 나가는 게임 영상을 보면 구독자 수가 백만 명이 넘는 채널도 많고, 조회수도 어마어마하다. 연수는 소심해서 그런 전문적인 유튜버들의 재치 넘치는 입담이나 일부러 망가져주는 편집 같은 걸 갖추지 못했고, 딱히 유튜버로서 성장해야겠다는 욕심을 가져본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취미 삼아 시작한 것치곤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연수의 만족과는 달리 나는 불만이 좀 있었다.

연수는 지각을 좀 많이 한다. 대체로 늦잠을 자서 그렇다. 늦게까지 게임을 하느라 새벽부터 자던 잠을 중간에 끊고 간신히 학교에 나와서, 다시 그 잠을 이어서 잔다. 학교 일정이 끝날 무렵 기상하여 새로운 하루를 드디어 시작하는 연수는 그대로 집으로 가서 어제 못다 한 게임을 오늘 다시 이어서 한다. 이런 생활의 이상한 악순환을 한 번은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게이머처럼 살고 유튜버처럼 산다고 해도, 이 정도면 그냥 중독 아닌가, 생활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연수에게 자꾸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 진다.




연수는 초1 때부터 게임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혼자 방과 후 수업을 다 하고 온갖 해찰을 부리며 느릿느릿 걸어와도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는 숨이 막힐 만큼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유치원에서도 깜깜해지도록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아이였다. 이제는 그렇게 늦게까지 돌봐줄 사람이 없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이런 것도 집에서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아버지는 늦을 때를 대비해 매일 아침 식탁 위에 5천 원을 두고 가셨다. 잔돈이 없는 날에는 만 원짜리가 올려져 있기도 했다. 초등학생에게 만 원은 억 소리 나게 큰돈이다. 그 돈으로 컵떡볶이라든가 호떡 같은 길거리 음식에 눈을 떴고, 남은 돈으로는 놀이터에서 만난 형들을 따라 PC방에 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구경만 했다. 방법도 모르고, 대체로 형들의 게임은 승부에 민감했기 때문에 함부로 끼어들 처지도 아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게임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젠 아무리 아버지가 늦게 돌아와도 상관이 없었다.

혼자 기다리는 밤이 외로울 틈이 없었다. PC방은 훌륭한 집이 되어 주었다. 게임하며 컵라면으로 저녁 식사를 때웠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형들과 채팅을 주고받으며 전우애를 다졌다. 점점 아버지가 더 늦게 돌아오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놓고 가는 오천 원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매일 PC방에 가는 건 무리였다. 게임하는 형들도 매일 가지는 않았다. 집은 적막했다. TV에는 별의별 것들이 다 나왔다. 그나마 심심하지 않게 틀어놓긴 했으나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에 몰려드는 외로움은 게임을 모르던 시절보다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그럴수록 PC방이 목말랐다. 점점 먹는 것도 아끼기 시작했다. 연수는 나날이 말라가면서 더욱 피폐해져만 갔다.




아버지는 연수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다.

키가 크느라고 마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용돈을 주고 있으니 밥 한 끼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식당에 들어가 오천 원이 넘지 않는 밥을 시켜서 혼자 먹고 나온다는 걸 상상하기는 어렵다. 우유 하나에 빵 하나, 또는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에 천하장사 소시지 하나, 아니면 구운 계란과 삼각 김밥 하나, 돈 오천 원이면 그 이상으로 사 먹기는 어렵다. 어떻게 생각해 봐도 매일 오천 원으로 아이가 혼자 건강하고 실속 있게 스스로 챙겨 먹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마냥 아들을 믿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휴대폰을 새 것으로 바꾸었다.

집안에 아버지가 쓰던 공폰이 돌아다녔다. 와이파이만 연결되면 공폰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게임 어플을 깔고 폰 게임을 시작했다. 이것 역시 할 만했다. 집에 컴퓨터는 없지만 모바일 게임으로도 아쉬운 대로 즐길만하다. 아버지는 공폰의 존재 자체에도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주말에도 항상 바빠 집안에 있지 않았다.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시기에 철저히 혼자 방치된 연수에게 공폰은 유일한 안식이 되었다. 그래도 PC방만큼 확실한 즐거움은 아직 없다. 그곳에서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말을 걸어주고 팀이 되어주고 같이 싸워나가며 때로는 같이 비난을 받았다. 그냥 그 자체로 좋았다. 형들이 이름을 불러주고 방에 초대해주고 비록 욕설이 절반이 넘지만 뭐라고 뭐라고 지시해주고 미션 수행 여부를 체킹해주는 것이 좋았다.




외로움이 손을 뻗었다.

어른들은 아마도 그걸 '중독'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수에게는 변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외로움'. 그것이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뻗었다. 일요일 아침, 아직 방에서 코를 고는 아버지, 식탁 위에 올려둔 아버지의 지갑, PC방은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었다. 한 번이 두 번 되긴 어렵지 않았다. 만 원, 혹은 천 원, 지갑에 보이는 것에서 아주 약간씩을 덜어내다가 지폐가 너무 적게 들어있을 때에는 영리하게도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점점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쉬는 운 좋은 주말이 되어도 이제 연수는 더 이상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어차피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점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관심이 없었으니 간섭도 없었고, 간섭이 없었으니 관계성도 없었다. 남남이나 다름없다. 




초등학교 1학년, 최연수.

세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연수를 키워주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퇴근 이후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저녁밥을 챙겨주기도 했다. 급한 날에는 친구 집에 잠시 맡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아버지마저도 거의 부재중. 그리하여 이제는 사실상 거의 동거인 최모 씨와 투명 인간 같이 생활해온지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상처 받을 일도 남아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상처는 상처, 연수는 고2가 되었으나 아직 남모르게 아파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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