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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Dec 07.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45

아마추어 02

처음 유튜브를 만든 날, 아버지께 링크를 보내드렸다.

아버지가 시청했는지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아무런 대꾸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닌다고 혼날까 봐 다시 여쭤보진 못했다. 그래도 간섭하지 않는 것에 만족했다. 귀찮게 벌컥, 방문을 여는 법도 없었고, 그렇다고 집안일을 해놓지 않았다고 혼내는 일도 없었다. 하숙생 1, 하숙생 2가 되어 살았다. 각자 필요할 때마다 세탁기를 돌리고, 자기가 먹은 그릇은 알아서 씻어 엎어두었으며, 냉장고에는 자기가 사다둔 음식만 알아서 꺼내어먹고 또 유통기한이 지날 무렵엔 각자 알아서 치웠다. 대체로 그나마도 연수 몫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법이 거의 없었다. 가끔 주말에 집안에서 서로 동선이 겹치면 둘 중 하나는 말없이 집을 나갔다. 대체로 그건 아버지 몫이었다. 연수보다는 돈도 시간도 더 자유로운 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연수에게는 아버지 외의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아버지에겐 가족이 없었다. 아버지의 가족이 없으니,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 외엔 연수에게 다른 가족이 생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아니면 집도 가정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아버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가족적인 그 무엇도 도모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버지를 통해서는 도무지 가족적일 수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를 통해서든 아버지를 벗어나서든, 연수에게는 가족의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연수의 유일한 희망은 얼른 어른이 되어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자기만의 가정을 새롭게 꾸리는 것. 그게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온정을 주고받을 길이 없다. 그런 연수에게 연애란 그대로 결혼까지 이어져야 할 것만 같은, 가족의 서막과도 같은, 그야말로 심하게 순수하고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연수는 연애하면 그대로 결혼까지 빨리 해버리고 싶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 그리고 게임하고 방송 만들어서 먹고살면 되지. 연수는 집에서 혼밥할 때마다 소박하고도 당찬 꿈을 톡 깨뜨려 노릇노릇하게 프라이 해서 찬밥에 얹어 먹곤 했다.




그런 연수가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

별로 말이 없고 차분한 연수, 뭐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에서 늘 퍼질러 자느라 딱히 존재감이 없던 연수, 아는 친구들만 아는 유튜브 채널, 그런 연수에게 불어온 봄바람은 전교생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왜냐 하면, 연수에게 다가온 여자애는 전교생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남자아이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인근 최고의 퀸카였기 때문이다. 이건 아이들 사이에서 정말 대박 사건이었다.




사실 요즘 애들은 진짜 다 예쁘다.

이런 말을 하는 게 교사로서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도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어떻게 요즘 애들은, 적어도 2천 년대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예쁜지 모르겠다. 산부인과에서 태아를 외모로 따로 분류하여 예쁘고 잘생긴 녀석들만 산모 뱃속에 포장해 두었다가 개봉한 것 같이. sns에 흘러넘치는 미모의, 앳되지만 싱싱하고 끼 넘치는 절세미남 미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난 어딘가 외계에서 잘못 날아온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이들의 페북이나 인스타에 들어가 보면 댓글이 죄다 '예뻐요.'와 '존잘'뿐이다. 서로 외모 칭찬 릴레이를 하느라 몇 백 개씩의 댓글이 오가다가 결국 다시 자기 sns로 돌아가 더욱 흠모할 만한 사진으로 외모 안전주의를 확인하며 오늘의 스토리를 업데이트하곤 한다. 누군가의 페북에 나랑 찍은 사진이 올라가면 난 영락없이 한 떨기 꽃을 위한 대조적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다. 난 그야말로 순식간에 오징어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게 난 늬들이랑 사진 안 찍는다고 했지!




어설픈 1학년을 지나고 무르익은 2학년이 되었다. 

화장도 더 세련되고, 소녀스럽던 치장도 점점 숙녀스러워진다. 맨투맨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던 사진이 몸에 달라붙는 니트나 짧은 원피스로 바뀌는 것도 2학년이 되어서이다. 남자애들도 점퍼 대신 재킷을 걸치고 종종 손목에는 어른스러운 시계를 휘감기도 한다. 외모도 분위기도 어느새 어른을 흉내 내며 인생 최강의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바야흐로 2학년이란 말이다. 우리의 퀸, 예림이는 그들 사이에서도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랄까? 진정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소유자이다. 인스타에 1만 명 팔로워를 자랑하는 여고생이 흔하지는 않으니. 뭐, 어차피 팔로워란 게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가끔 사진을 보며 안구 정화에 힘쓰는 사람들의 팔로잉을 일일이 신경 쓰며 살 순 없다.




우리 반 아이는 아니지만 나는 조심스러웠다.

혹시 쓸데없이 아는 척하며 DM(Direct Message)이라도 보내오지 않는지. 서로 팔로우하지 않으면 함부로 메시지를 보낼 수 없으니 걱정 말란다. 종종 아는 오빠들에게서 메시지를 받기도 하는데, 대부분 답변을 딱히 기대하는 편도 아니고, '우리 아빠가 싫어해서 연락이 어렵습니다.'라고 보내면 다들 그대로 메시지를 끊어버리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점점 더 팔로워 규모가 커져서 협찬 같은 것이 들어오게 되더라도 과감하게 거절할 계획이라고. 제법 큰 가구 공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예림이는 그런 것도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정도로 풍족할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브랜드가 아니면 입지도 신지도 바르지도 않는 편이다. 도대체 굳이 왜 인스타나 페북에 저렇게 미모 자랑질을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요즘 애들이 워낙 다 그렇게 소통하고 사니까 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예림이가 연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연수가 알려주는 대로 게임을 시작해보았다. 다정하고 조용한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에 대해 설명할 때, 꼭 예림이가 플레이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조목조목 짚어내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우리 학교 아이라던데, 보면 볼수록 참 귀여운 게이머이다. 뭔가 어설픈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주변에 센 척, 잘난 척, 있는 척하는 놈들, 수컷 냄새 풍기느라 온갖 폼 잡는 놈들에게 질렸다. 무슨 지갑이니 운동화니 하는 것들을 사다 주면서 환심을 하려고 하는 놈들도 있다. 돈 몇 푼에 마음을 사려고 하다니, 자신을 속물 취급하는 놈들은 정말 인간 같지도 않게 느껴졌다. 고등학생이지만 돈 들여, 시간 들여, 인맥 다 동원해서 이벤트 만들어주는 유치한 아이들도 있다. 예림이는 그런 것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도도한 여인이었다. 그런 예림이에게 제법 인기 있는 유튜버이지만 겸손하고,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 길에만 집중하는 연수가 무척 신선하게 와닿았던 것이다.




예림이가 연수에게 메모를 남겼다.

같이 게임을 해볼 수 있겠느냐고, 유튜브 채널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고, 주말에 잠시 시간 비는데 연락 달라고, 전화번호까지 적어서 남긴 짧은 메모. 흔해 터진 DM도 아니고, 서로의 sns에 접근하는 것도 아니고, 올드해빠진 종이쪽지라니, 이젠 이런 게 다 신선하다. 연수는 이미 그 메모와 사랑에 빠졌다. 보고 또 보고, 펼치고 또 펼치고, 주말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PC방에 데려갈 것인지, 게임할 때 막 튀어나오는 욕설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진짜 PC방만 갈 것인지 아니면 밥이라도 같이 먹을 것인지, 게임에 정말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설마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게임을 배우려는 건지, 유튜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건지. 혹시나 게임을 못한다고 비웃는 건지 아니면 유튜브를 너무 엉망으로 만들어서 놀리려는 건지. 심지어 나를 불러내어 놓고 룰루룰루 신나서 나갔는데 자기 남친과 나란히 같이 와서 알려달라고 하는 건 아닌지, 미친, 아, 미치겠다. 미쳤네, 미쳤어, 미쳤다. 돌았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대체?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꽃바람이 불어도 쓰러진다.

연수는 너무 쉽게 결혼까지 결심해버린 것 같다. 생각이 단순해서 집중도 잘 된다. 그러나 아직 어린 고2 남자애의 집중이라는 건 때론 극단적으로 가버리기도 하나 보다. 한 장의 메모에, 그리고 메모를 놓고 돌아서는 그 미모에, 연수는 순식간에 인생을 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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