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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Dec 10.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46

아마추어 03

연수와 예림이는 곧장 사귀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은 눈만 마주치면 그대로 사귄다. 눈웃음에 모든 정보를 다 담고 있는 걸까? 그 주파수가 서로 딱 맞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고 광속으로 연애에 돌입하는지, 나로선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준비된 연인 예림이를 마다할 남자애는 어차피 아무도 없을 테니 어쩌면 그 쪽지가 펼쳐지던 순간 이미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예림이는 그간 과시욕에 깃털을 잔뜩 부풀린 수컷 공작새 같은 남자애들과 달리 수수하고 꾸밈없는 연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동안 알콩달콩 둘은 PC방을 들락거렸고 연수는 그날의 게임을 기억하며 초보자를 위해 더욱 세심하게 콘텐츠를 만들어 올려 유튜버로서 여친을 즐겁게 해 주었다.




연수의 얼굴이 조심스럽게 밝아지는 것도 잠시였다.

예림이는 바람둥이 스타일은 전혀 아니지만, 급하게 시작된 사랑에 쉽게 지쳤던 것 같다. 특히 이렇게 곱게 키워온 딸내미, 비록 고등학교는 별로 좋은 데를 못 보냈지만 내신 관리라도 잘해서 번듯하게 대학을 보내고 싶었는데, 엉뚱하게 게임하는 애를 만나고 다니다니, 예림이의 부모님은 이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할 수만은 없었다. 아버지는 사업으로 바쁘셨지만 틈 나는 대로 하굣길이며 학원 귀갓길에 대기하고 있다가 차에 홀랑 태워버렸다. 부모님의 본격적인 반대에 부딪히자 예림이는 큰 저항 없이 연애를 정리했다. 연수는 교문 앞에서 몇 번이나 산산이 부서지는 사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연수에게는 세상에서 정 붙일 유일한 존재였다. 볼품없는 자신을 멋있다고 해주고 갈 곳 없는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연수에게 예림이는 빛 그 자체였다. 음습하고 막막한 동굴에 호기심과 경탄이 가득한 눈빛으로 찾아온 낯설고 따뜻한 요정 같은 존재. 연수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예림이는 다 갖추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주인인 것 같은 안정감, 게임을 엉망으로 하면서도 깔깔대며 다음 게임을 준비하는 대책 없는 자신감, 어디서나 누군가의 눈길을 의식하는 듯한 도도함 같은 것들. 예림이와 함께라면 어둡고 깊은 자신의 영혼 속에도 존재의 이유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예림이가 떠났다.

연수는 쏟아져버린 마음을 어떻게 쓸어 담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늘 흥건하게 젖어 누추한 소매 끝에 뚝뚝 흘렀다. 젖어버린 모든 것들이 서서히 증발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연수도 같이 증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종종 연수 눈앞에서 손을 휘저으며 '여보세요?' 하고 안부를 물어보곤 했지만, 연수는 고개를 떨구고 초점 잃은 눈을 그대로 감아버렸다. 연수의 채널은 한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예림이가 떠나던 날, 연수도 사실 껍데기만을 남겨둔 채 영혼은 이미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워낙 흔하게 만나고 헤어진다. 어제 사귀던 애랑 오늘 원수가 되어 있기도 하고, 어제 친구의 남자였던 애가 오늘 내 남자가 되어 있기도 한다. 이 아이들의 연애란 참으로 내 개념 밖에 존재하는 것 같다. 이해할 수가 없을 만큼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며 아무나 쉽게 만나고 그 모든 것을 쉽게 용인한다. 연수에겐 특별했겠지만 그 또한 지나갈 일이라고, 비록 순식간에 결혼까지 결심할 정도로 연수는 심각했지만 그 또한 고딩들의 바람 같은 연애일 뿐이라고, 그간의 이 아이들의 행태를 지켜봐 온 1인으로서, 나는 조금은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수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었다. 원래 자기 것이었던 것 마냥 예림이를 전부라고 여겼고, 누군가가 그걸 훔쳐간 것 마냥 허탈감과 분노에 사로잡혔다. 말로 위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좀 충분히 필요했다.

하지만 예림이와의 연애 끝에 그녀의 아버지와 부딪혀 난파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다른 일이 몰려왔다. 이번에도 아버지였다. 이번에도 연애였다. 연수의 아버지가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연애의 끝이 주는 충격이 문제였다. 이 아버지도 그의 동굴로 날아든 날개 달린 요정에게 푹 빠져버린 나머지 결혼을 결심했다. 연애는 곧 결혼, 이 뜨거운 마음은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두 남자가 똑같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른이다. 결혼이란 매우 현실적인 이슈였고 또한 현실적으로 진지하게 진행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외롭고 고달픈 연수의 인생에 새로운 엄마가 생길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정님은 늙다리 재혼이라 할지라도 신혼의 달콤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우중충한 고딩 아들이 게임만 하는 방구석은 결코 신혼에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원룸을 하나 얻어 아들에게 내어주며 느닷없이 독립을 명했다.




사실 고2 남자애에게 '독립'이란 참 설레는 것이다.

혼자만의 집, 혼자만의 방, 혼자만의 동굴이 주는 매력은 특히 18세에겐 치명적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게이머에겐 거의 필수라고 해야 하나? 특히 사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아버지와 건조한 동거 중이라면 이건 땡큐라고 해야 하나? 연수 입장에선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같이 지낸다 한들 식사며 뭐며 생활 하나도 챙기는 법이 없는 사이인데, 처음 보는 아줌마까지 들어와서 같이 산다면 더 껄끄러워질 것이 뻔하다. 이번 기회에 그냥 마음 편하게 혼자만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는 나이이다. 뭐 그렇게 좋은 집은 아니지만,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것들이 풀옵션으로 들어가 있어서 청소만 잘하면 얼마든지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수에게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예림이와의 사랑을, 더 나아가 결혼을, 어쩌면 나만의 단란한 가정을, 사랑을 주고받는 따스함을 빼앗겼다. 그런데 이 아버지라는 작자는 자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내 유일한 동굴마저도 빼앗겠단다. 어딜 가나 천덕꾸러기 신세, 간절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대상은 욕심도 없이 딱 두 명뿐인데, 그들에게서 배척받는 서러움이 겹쳐 지구가 반토막이 나버렸다. 사랑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게 인간이라고 한다면, 연수는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자신의 인간됨도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섬세한 연수는 사실 섬세한 것이 아니라 단순했던 것 같다. 마음이 무식하게 한 가지 컬러로만 도색되어 혼합된 다양한 색깔 따위는 들어설 틈이 없었다. 




유튜브는 그나마 소통의 공간이었다.

재미를 넘어 자기 존재를 의식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내가 하는 게임을 본다. 내가 설명하는 걸 듣는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해본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즐거워한다. 몇 명만이라도 족하다. 나를 숨 쉬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인정해준다. 내 콘텐츠를 기다려준다. 비록 유치뽕 초딩들이 대다수라 할지라도 나의 인생이 헛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적어도 채널 속에서 나는 나로 존재한다. 그래서 공을 들였다. 기분 좋게 만들었다. 행여 욕설이 도배될까 봐 댓글 창도 닫았다. 딱히 소통이랄 것도 없지만, 꾸준히 늘어나는 조회수와 '좋아요'의 누적수를 보면 그래도 뭔가 마음이 서로 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용기를 내어 시작한 라방도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특정 소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불특정 다수의 사랑으로 대체해보리라, 연수의 의식이 그렇게까지 논리적이진 못했지만 본능은 민첩하고 의뭉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채널을 통해 사랑이 꽃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이 지면서 채널도 멈추었다. 이젠 무슨 낙으로 살지?




이후의 이야기는 진술하는 것조차 괴롭다.

나는 교사로서 겪어서는 안 될 일을 겪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교사들이 이 땅에 하루에 한 명 꼴로 생기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 통계가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연수 아버지의 차분한 목소리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들려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하시는 거야? 왜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잘못 들었나? 내가 미친 건가? 뭐라고요? 뭐가 어쩌고 어째요? 악몽처럼 흐릿하게 들리던 말이 또렷해지면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성큼 심장을 에워쌌다. 그 입에서 그 말이 나와요, 지금? 당신이 지금 당신 입으로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냐고요? 괜히 아버지에게 화를 낼 뻔했다. 아마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다. 녹음이라도 해둘 걸 그랬나? 무슨 말을 들었는지, 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건 이렇게 백날 글로 써봐야 표현이 안 된다. 나는 지금도 그때 순간 멈추어진 숨을 혼자 뒤늦게 몰아쉬곤 한다.




해남이랬다.

엉뚱하게도 생판 남의 집 아파트, 연고도 없고 별 이유도 없는 전혀 뜻밖의 장소. 비가 많이 왔다. 예림이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놓쳤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전 세계가 다 잠들었다. 예림이도 아버지도. 모두가 자기만의 꿈을 꾸는 시간. 내 꿈은 뭐였더라? 게임? 멈추어진 채널이 무한한 공간에서 흩어질 것을 생각하니 더욱 공허했다. 영원한 건 없는 건가? 사랑도? 삶도? 존재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들의 소멸은 누구의 몫인가? 무슨 인터넷 사이트 무슨 클럽에서 무작정 만나 같이 해남으로 떠나온 이름 모를 두 사람은 거사를 포기하고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이젠 철저하게 혼자이다. 내가 선택해서 지구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떠나는 것만큼은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만이라도. 하지만 용기 내어 걸었던 전화벨의 규칙적인 대기음마저 벌써부터 그리운, 그래 봤자 절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그래도 한때나마 행복했고 감사했던, 그래, 이걸로 족하다. 숨을 이어주던 대기음이 멈추었다. 이젠, 이젠.




그 아이가 서 있던 그 자리를 수도 없이 상상했다.

비를 맞으며 내려다보았을 암흑 덮인 낯선 땅을.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마음의 활주로. 나에게 혹 전화했다면 나는 받을 수 있었을까? 내가 혹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벗어날 수 없는 무한 로프에 갇혀 나는 종종 연수처럼 초점 잃은 눈으로 연수를 껴안아준 허공을 바라보곤 했다. 누군들 삶에 익숙하며 또한 능숙하겠니, 연수야. 우린 모두 엉거주춤,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프로 게이머가 아니어도 유튜브 만들고 즐기듯이, 인생에 프로 따위 어디있니, 그냥 어설퍼도 살아내는 거지. 많이 힘들었지? 잘해보려고 욕심내던 것도 아닌데, 대충이라도 해보려던 건데, 그마저도 참....그래, 우린, 사랑이 전부인데. 연수야, 연수야. 




오늘따라 1인칭 화법마저 싫어진다. 

남의 이야기처럼, '그녀는 학교로 돌아가기 싫었다.'라고 쓰고 싶다. 연수가 원룸으로 옮겨간지 20일째 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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