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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13. 2022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51

모노드라마 01

교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학생부에서 담임교사 긴급 호출이다. 학생부 마동석 선생님이 민원 전화를 받아 학교 앞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거기서 피 흘리며 쓰러져있는 소진이를 데리고 왔다. 보건 선생님은 급히 붕대를 감아 넘기며 당장 응급실에 데려가라고 했다. 학교로 119가 들이닥치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게 훨씬 빠르다. 난 혹시 몰라 내 오전 수업 시간표를 바꾸도록 수업계에 긴급 요청을 하고 소진이를 급히 차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가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병원에 잠시 입원시켜두면 저녁에 와서 보겠노라고 하셨다. 입원이 그냥 되나, 다 부모 동의가 되어야 하는 건데. 우선은 응급실로 갔다. 경황이 없었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소진이와 별다른 대화를 하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처치가 이루어졌다.

별로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처치하는 동안 내가 본 소진이의 팔뚝은 그 아이의 마음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 같았다. 촘촘하게 빈 틈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어진 자국들, 상처 위에 또 입은 덧입은 상처들, 어떻게 저런 상태로 있었지? 병원에서는 팔뚝 치료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더욱 급한 것 같다고 했다. 정신과 외래를 잡아줄 테니 상처를 드레싱 하러 오면서 상담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 모든 내용을 그대로 어머니께 전달해 드렸다. 어머니는 우선 알겠다고, 저녁때 가서 아이를 보겠다고 하셨다.




"아프지? 진통제도 들어가고 있으니 좀만 참아."

"아뇨, 별로 안 아파요."

"잘하는 짓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살살했어요. 걱정 마세요, 쌤."

"살살? 야, 너 진짜!"

"응급실은 좀 오버죠. 솔직히."

"너 피 많이 흘리면 그냥 사망이야. 또 이러기만 해 봐, 그냥!"

"쌤, 저 좀 졸려요. 잘래요."

"야! 넌 이래 놓고 잠이 와? 일어나기만 해 봐, 혼꾸멍나야 돼, 진짜."

"쌤, 헤헤, 미안해용. 빠이."

"자고 일어나자마자 카톡 해. 까불지 말고. 알았어? 나 이따 다시 올 테니까." 




늘 생각한다.

이런 일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예방되었어야 한다고. 아이가 눈물로 만들지 못한 길을 핏물로라도 열어보려고 손목을 긋기 전에 어른이 먼저 대화의 물길을 열었어야 한다고. 날 좀 보소, 아우성이 터져 흐르는 팔뚝을 뒤늦게 감싸 안기 전에 먼저 축 처진 어깨를 먼저 돌려세웠어야 한다고. 그 타이밍에 관한 연구는 시시때때로 부드럽고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서로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먼저 아이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이런저런 생각의 실타래가 뒤엉켜 뒷목을 뻐근하게 칭칭 감아올릴 무렵, 소진이는 링거를 맞은 채 천연덕스럽게 침상에서 잠들어 있었다. 




소진이는 요즘 들어 지각을 자주 했다.

딱히 집에서 늦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학교 앞까지는 매우 적당한 시각에 도착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일부러 지각을 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왜 학교 앞까지 다 와놓고, 정작 9시를 꼭 넘겨서 늦게 들어오는 건지. 아니, 그보다도 더 충격적인 것은 왜 사람들 지나다니는 골목길, 벌건 대낮에 굳이 그런 '쇼'를 하다 들어오는 건지. 그렇다. 그건 명백히 '쇼'였다. 그렇지 않고선 굳이 그 시각 그 장소에서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건 처음부터 관객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 주는 사람, 탄식하며 뛰어와 말려줄 사람, 잘할 수 있다고, 잘 살아보자고, 넌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말해줄 사람, 아무 의미 없이 줄줄 흘리는 피를 보며 경악해줄 사람, 손목에서 삶의 의지가 더 새어나가지 않도록 꽉 붙들어 매어 줄 사람, 그냥 그런 누군가를 향한 퍼포먼스. 




처음엔 지나가던 주민이 학교로 전화를 했다. 

여자애 하나가 학교 앞 골목에 주저앉아 있다고, 옷에 피가 묻어있는 것 같다고. 그날 급히 보건실로 뛰어갔을 때엔 이미 간단한 처치를 끝낸 보건 선생님이 상담실과 연락하여 아이의 상담 일정을 잡던 중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 아이의 손목이 어떠한 상태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붕대로 하얗게 정돈된 팔뚝.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상담실에서 먼저 살피겠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고맙고 든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소진이에 대한 사소한 관찰 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전부. 그 사이 상담실의 문턱을 드나들기 시작한 소진이는 한동안 잠잠히 학교에 왔다가 가방을 두고 상담실에 종일 앉아있곤 했다. 




그리고 오늘이 두 번째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소진이는 그 사이에도 여러 번 그렇게 골목 앞에서 누군가의 목격을 희망하며 주저앉아 있다가 아무도 봐주는 사람도 신고해주는 사람도 없어 제 발로 뻘쭘하게 모노드라마를 수습하고 그냥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인지한 자해는 그렇게 두 번이지만, 실은 혼자 자기만의 흔적을 남기며 누군가의 관심을 기다리느라 지각이 잦았던 것이다. 지각이 습관이 될까 봐 신경이 쓰였지만, 그 사이에 몇 차례나 그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소진이는 무척 화려한 편이다.

길고 탄력 있는 몸매에 오목조목 예쁘장한 얼굴, 귀에는 귀걸이, 목에는 목걸이, 온갖 치장에 목 뒤에는 장미 문신까지. 그리고 손목에는 가죽끈과 금속 액세서리가 휘감겨 반짝거렸다. 그 속에 이런 빗살 무늬가 뒤섞여 아로새겨져 있을 줄이야. 생각해 보면 여름에도 늘 긴소매나 팔토시, 아니면 더워도 꼭 치렁거리는 손목 가죽끈, 그래서 그저 문신이라도 했겠거니, 했건만.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소진이의 한숨이 손목 피부로, 핏줄로, 스며들어 있다. 많이 아프겠다. 뭐가 됐든.




사실 난 이쪽의 전문가가 아니란 말이다. 

폭력, 왕따, 이런 사건 사고들도 보통 일이 아니다. 열 올리고 분통을 터뜨리고 신경 바짝 조여가며 살펴야 할 일들이 차고 넘치는데, 왜 이런 류의 사건들까지 예기치 않게 훅 치고 들어오는 건지. 내 학교 일상이 신문 사회면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 학년도에 단지 한 학급을 맡았을 뿐인데, 어둠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게 퍼져 내 영혼을 뒤덮을 줄이야.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가 새삼 슬프고 심지어 약간 악에 받치는 기분까지 들었다. 차차 교사들은 이제 교육 행정학이니 교육 철학이니 교육 공학, 교육 심리학, 교육 사회학, 이 모든 것에 앞서서 아동 심리학을 반드시 부전공하고 상담 자격증을 임용 조건으로 삼아야 할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지나친 건가? 이렇게 아픈 아이들은 정말 소수에 지나지 않는 걸까? 소수라면 그냥 둬도 되는 건가? 다 내려놓고 보더라도 또다시 시작되는 근원적인 질문. 교육이란, 가정이란, 사회란, 인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지난한 계절이 흐르면서 점점 무디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에는 굳은살이 좀처럼 박이지 않는 모양이다. 곪아 터진 상처 위에 또다시 후비는 상처들이 소진이의 손목처럼 어지럽게 얽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화가 났다. 마음 같아선 멱살이라도 잡고 따귀라도 때려가면서 정신 차리라고 마구 흔들어보고 싶다. 찬물이라도 머리에 확 끼얹어준다든지 자동차 경적이라도 귀에 대고 빵빵 울려주고 싶다. 소진이 눈동자에 영혼이 다시 소환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왜 너까지 이러느냐고, 도대체 왜 자신을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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