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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Dec 18.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49

소연의 하소연 01

교무실 문이 빼꼼 열린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런 '빼꼼' 같은 소리를 내며 살짝, 조심스럽게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복도에서부터 몰려드는 바람을 내 귓가에 스치게 하는 사람은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나는 잘 안다. 내 자리는 하필이면 교무실 제일 바깥, 학년별 특별 교무실이라 규모도 인원도 적지만, 하여튼 제일 문간 자리, 제비뽑기에서 제일 운 나쁘게 얻어걸린 일명 '문지기' 자리이다. 대놓고 입구 자리라 따로 파티션을 치기에도 다른 사람들의 동선에 방해가 될 것 같고, 나도 애들 만나기 갑갑할 것 같아 그냥 두었는데, 요즘 들어 그냥 파티션이든 커튼이든, 아니면 벽이라도 주워다가 확 세워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이 빼꼼의 주인공 때문에.




오늘은 7교시 일정이다.

그렇다면 빼꼼 씨가 이 빼꼼질을 최소 7회 이상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8교시인 날은 8회 꽉 채워서 하니까 내 예상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처음에 너무 따뜻하게 받아줘서 그러는 걸까? 곰곰이 그날 일을 되새겨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내가 과했던 점도 없었고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정도 응수는 했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워낙 탄력이 붙어 어디쯤에서 하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쯤 되면 내게도 요령이 약간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돌아보지 않는다. 조금은 쌀쌀맞더라도 다 받아주면 업무가 마비되기 십상이다. 나는 자세를 고치고 바로 앉아 비상 태세를 갖추었다.




"선생님."

"응?"

"선생님."

"응, 그래, 쌤 일하는 중인데, 무슨 일이야?"

"선생님."

소연이는 늘 이렇게 날 그냥 부르기만 한다. 집요하게 부른다.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얼굴을 돌아보며 눈을 마주쳐줄 때까지 부른다. 나는 엑셀표를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소연이를 마주 보았다. 그제야 소연이는 내 시선이 부딪히자마자 눈을 내리깔고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쪽지를 내 책상에 올려두며 곱게 목례를 하고 나간다. 한숨이 난다. 소연이는 지난 시간에도 수업은 반쯤 듣고 어느새 또 종이에다가 길고 긴 하소연을 써서 가져온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뭐하고 계세요? 저는 생물 수업 중인데, 재미가 없어요. 생물을 공부하다 보면 내 세포는 왜 그렇게 분열했을까? 내 유전자는 왜 부모님에게서 받아야만 했을까? 왜 사람은 태어나고 죽을까? 이런 생각 속에 빠져서 너무 우울해지거든요. 선생님은 누굴 닮으셨어요? 선생님 부모님은 멋진 분이실 것 같아요. 오늘은 남은 수업들도 다 암담해요. 다음 시간은 '윤리와 사상'인데요, 인간은 정말 역겨워요. 그럴듯한 생각들로 포장하지만 결국 인간은 타고난 더러움을 복잡한 사상으로 합리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사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슨 생각을 했든,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지금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배워야 하고, 배우는 척해야 하고, 시험 보고 얼마나 잘 시늉했는지까지 다 인증해야 하고, 나는 매일 살아져서 사는 건데,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하고. 늘 활기차고 긍정적인 선생님을 너무 사랑해요. 선생님,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이번 쪽지 내용은 이랬다.

아니, 대부분 쪽지 내용이 이런 식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 안에 짙게 깔린 어둠과 근원적인 질문들, 끝도 없는 하소연, 숨 막히는 사랑 고백, 한 번도 이 아이의 쪽지를 안 읽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 쪽지에 답장을 해본 적도 없다. 적어도 첫 편지만큼은 물색없이 답장을 해줄 법도 했으나, 편지를 전해주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답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직감이란 게 어설퍼서 그 아이의 편지가 이렇게까지 질기게 오래갈 것이라고는 가늠하지 못했다. 벌써 한 학기가 다 끝나가도록 일기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소연이의 편지는 묵묵히 답장 없는 메아리가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냥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부터 '나 외로워요' 하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에 몇 번 더 그럴 순 있겠다 싶었지만, 거의 사생팬처럼 들이대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작년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께 슬쩍 여쭈어보니, 그냥 내버려 두란다. 자기한테도 그렇게 한동안 쏟아붓다가 잠잠해졌으니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런데 웬걸, 전혀 괜찮아지지 않는다. 내가 더 매력적이어서일까, 아니면 알 수 없는 어떤 증세가 더 심해져서일까? 이제 점점 조금씩 무서워진다. 이 집념과 애정이.




여름 방학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교무실 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내 자리를 빼꼼거리며, 또 때로는 일이 바빠서나 때로는 의식적으로 잠시 피하기 위해서 자리를 비울 때에도 어김없이 쪽지를 놓고 머뭇거리다 사라지는 소연이를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방학식을 끝내고 아이들을 보낸 뒤, 남은 업무로 정신이 없는데 카톡이 몰아닥쳤다. 




선생님, 벌써 보고 싶어요.

선생님, 방학 첫날 축하드려요.

선생님, 그런데 이제 방학 동안 선생님 못 보면 어떻게 살죠?

선생님, 제가 이렇게 계속 카톡 보내도 돼요?

선생님, 답장 안 하셔도 상관없어요. 그냥 혼자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거든요.

선생님, 저 이제 피아노 연습 끝났어요. 제가 친 곡 녹음해봤는데 들어보실래요?

선생님, 

......




덜컥 낚싯줄에 걸려버렸다.

나는 말줄임표에 취약하다. 가끔은 쉼표 뒤에 뜬금없는 공백에도 참지 못한다. 뭐지?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걸까? 거북이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내게 트라우마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 말이 많은 아이들은 그래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말이 없어지는 아이들, 혹은 애당초 별로 말이 없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순간 겁이 난다. 내가 화답하지 않아서 혹여 다음 일을 예방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왜 저러지? 왜?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내가 너무 응답을 안 해서 속상한 걸까? 별로 할 말은 없는데 혼자 카톡 도배질하다가 현타가 온 걸까? 지금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애가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혼자 떠들다 지친 거겠지. 아닌가? 말줄임표를 보면서 혼자 온갖 상상을 펼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답장을 남겼다. 

'소연아, 방학 잘 보내. 피아노도 열심히 연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금세 '1'이 없어졌다.

읽었나 보다. 다시 시작된 카톡. 내가 쓴 응답을 캡처해서 네모로 잘라 폰 바탕화면에 오려 붙인 뒤, 그 화면을 또 캡처해서 카톡에 올려놨다. 그리고 카톡 프사도 내 메시지 캡처한 jpg. 아이고, 이 집착. 순간 놀라 괜히 답장했네. 에휴, 다시는 안 한다. 나는 카톡방을 그냥 나와버렸다. 하지만 방학 내내 소연이는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했다는 사실, 소연이는 일몰을 보며 자주 눈물을 짓는다는 사실,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 심지어 셀카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 집에 혼자 있어도 화장을 한다는 사실 등등을 내가 원하지 않아도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소연이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할 법한 짓들을 나와의 카톡방에다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라리 널리 sns에다가 하지, 왜 좁아터진 나와의 작은 방에다 이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방학 동안 잠시 책을 읽다가 돌아서면 수십 개씩 쌓여있는 소연이의 카톡에 나도 점점 지쳐만 갔다.




다시 개학하고 나니 차라리 이게 낫다.

카톡보다는 쪽지가 정신적으로 덜 시달리는 느낌이다. 그렇다. 시달렸다, 나는. 이러다 내가 죽게 생겼다. 소연이 부모님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뭐야, 그냥 나 혼자 다 당하면 땡이란 거야? 이러다 내가 신경증 비슷한 게 생길 것만 같아서 상담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나만 나쁜 교사가 되고 있다고. 난 정말 나쁜 교사인지도 모른다고. 난 어쩌면 교사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난,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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