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신감이 들었다.
나는 대문자 I이다. 그러기에 뭔가 앞에 나서서 말을 하거나 낯선 이들과의 대화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비스직을 하였다는 게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다시 기억의 순간을 거슬러 출발점 앞으로 돌아가본다. 딸기 한 상자를 들고 한 특이한 면접 이후 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퇴사 통보를 하였다. 다행히도 흔쾌히 나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주었고 그것에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게 첫 출근을 앞두고 나름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았다. 어찌 보면 낯선 공간과 친분이 없는 이들 사이에서 기약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기에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 면접 때 보았던 부점장님의 모습을 연상해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서 생각해 보니 작은 키에 뭔가 엄청 쾌활한 톤의 밝은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매니저의 모습은 뭔가 이지적인 느낌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아마 소심이인 내가 조심해야 할 사람이 아닌가라는 예상을 하였다.
이런저런 멘트를 짜보며 밤을 지새워 봤지만 역시 명확한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조금은 설렘과 무거운 마음으로 매장 문 앞으로 와서 연락을 드렸다. 부점장님이 마중을 나와서 반겨주었다. 역시나 밝은 톤의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은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출근 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나서 업무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받고 그날의 짝을 배정받았다.
매장의 구성원은 총 6명이었다. 점장 1명, 부점장 1명, 매니저 2명 , 스탭 2명이었다. 일단 점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주하는 인력이 아니었다. 부산과 울산의 지점을 관리하여 주기적으로 매장에 방문을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를 픽하고 뽑아준 부점장님은 실질적인 현장 관리의 총책임자이다. 나이는 나보다 2살이 많았다.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놀라웠고 한 매장의 운영을 전반적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매니저 2명은 각각 나와 동갑과 1살 어린 나이였다. 두 분의 매니저 다 여성분이었고 출근날은 걱정했던 차가운 이미지의 매니저가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스태프로 일하는 직원은 동갑의 남성이었다. 아무것도 숙지가 되지 않은 나의 전우조가 되었다. 당분간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을 배워야 했다. 매장 여기저기를 돌면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조금은 디테일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업무는 아니었다. 주요 업무는 책을 진열하고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또 중고매장이다 보니 책을 매입하는 과정을 진행해야 했다.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일단 제일 먼저 배우게 된 것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일이었다. 하루 중 제일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공간이 카운터였다.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업무였고 어떻게 보면 전쟁의 최전선이었다.
나의 짝인 선임스탭이 시범을 보여주었다. 청산유수 같이 멘트를 치고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이 살짝 멋져 보이며 갑자기 머릿속으로 잘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들어오며 손에 땀이 났다. 몇 차례 시범 뒤에 같이 손님과 직원으로 상황극을 해보았다. 일단 교육자료로 받은 멘트들을 외운 대로만 해보자 하였지만 갑자기 눈을 마주치니 머리가 하얗게 지워진다. 어버버 하면 절면서 실수를 연발했다. 쉽게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감이라는 것이 조금 있었는데 마주한 현실에 급격히 떨어졌다.
다들 처음이기에 그렇다고 시간이 지남 괜찮아 질거라 긴장감을 풀어주려 하였지만 말문은 계속 턱턱 막혔다. 결국 잠시 환기시키러 나의 짝과 잠시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담타를 하러 갔다. 뻘쭘히 이런 사소한 부분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의 창피함이 들었는데 그가 나에게 자신의 첫출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객이 이것저것 물어보다 돈을 받지 않고 보낸 이야기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잔돈을 잘못 건네주어 더 준 기억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사소함의 실수가 쌓여 이제는 두렵지가 않다고 많은 사고를 쳐보아서 자신감이 더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고 칠까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사고 치라고 말했다. 뭔가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은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 연습을 몇 차례 했다. 여전히 실수가 많았지만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왠지 몇 번의 반복으로 나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연습이 끝나고 실전으로 한번 고객응대를 하게 되었다.
진땀이 나며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지만 차례차례 응대의 매뉴얼에 따라 진행하였다. 그렇게 계산을 마무리하고 짝을 쳐다보았다. 엄지 척을 해주는데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감정이 들었다. 해내었다는 것이 이곳의 구성원으로 나도 충분히 1인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뿌듯함에 감격했다. 그 뒤로 수차례 고객의 계산을 하면서 기나긴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대문자 I가 조금씩 바뀌어지는 순간의 희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