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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이의 최후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by 마늘






나는 작년 도쿄 아오야마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곧 거지가 될 , 아니 이미 거지일지도 모르는 사나이의 사진이다. 그는 아오야마의 신사 두 번째 계단에 앉아있었다. 베이지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고 남루한 회색빛 두터운 상의와 통이 넓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마 추운 겨울에는 그 안에 얇은 옷들을 껴입기 위해서였으리라. 얼굴에는 짜파게티 면발 같은 주름이 가득했고 눈은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수염은 뺨에서부터 목까지 잡초처럼 수북하게 뻗쳐있었다. 나는 그의 과거를 상상해보며 <배짱이의 최후>라는 이름의 소설을 이 곳, 부다페스트 센트럴에 있는 한 바에서 조니워커 블랙을 샷으로 홀짝홀짝 들이키며 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나의 흐름을 깬 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귀여운 외모의 아가씨였다. 몇 마디의 대화로 서로의 신원을 확인한 그녀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당신 말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빈둥빈둥 대며 살고 있는 거죠?"



나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곧 <배짱이의 최후>라는 소설이 완성될 거예요. 그 소설이 완성되려면 지금처럼 제가 빈둥빈둥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그녀는 책이 완성되면 꼭 읽고 싶다고 했다. 나는 책이 나오면 그녀에게 보내주기로 하고 책 한 권 값으로 삼백 불 (약 30만 원)을 받아냈다. 자정이 되자 그녀는 떠났고, 난 그녀가 내게 준 그 삼백 불로 일주일간 어떤 종류의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실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절한 그녀 덕에 소설 <배짱이의 최후>가 완성되는 시기는 조금 더 미뤄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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