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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하는 남자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by 마늘






장맛비가 아침부터 큰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약속이 유독 많은 인태는 비가 그치기를 기도했지만, 그가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서는 그 시간까지도 결국 비는 그치지 않았다. 유독 우산 쓰는 것을 싫어했던 그였지만 오늘처럼 쏟아지는 비는 우산이나 우비를 쓰지 않고는 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그는 문득 비를 피하는 남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비를 피하는 남자는 (비남이라고 줄여서 써본다.) 태어날 때부터 실제 비를 본 적이 없다. 왜냐면 말 그대로 비가 늘 그를 피해 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그가 살던 지역은 단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으며 그래서 소풍이나 운동회는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그 지역의 학생들은 매주 체육시간에 어김없이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남자건 여자건 무척 건강해져서 그들이 중학교로 진학할 때 체육점수만큼은 대부분 만점을 받았다. 그가 비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의 부모님이 그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를 갈 때였다. 이상하게도 그가 그 지역에 나타나기 바로 전부터 일주일간 기록적인 폭우가 내릴 거라던 예보와는 다르게 매일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그때부터 그의 부모님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고 그들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의 부모님 역시 그와 함께 있어왔으므로 비를 맞은 기억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그의 부모님은 그를 데리고 몇 가지 테스트를 해봤고 (멀지 않은 지역에서 비가 온다면 찾아가 본다던가, 스콜이 많은 괌 같은 섬에서 일주일 정도 있어본다던가...) 그가 정말 비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것은 그나 그의 부모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비남이라는 것을 알려서 국가적인, 아니 세계적으로 날씨를 바꾸는 좋은 일에 일조하자는 아버지와 자신의 아들이 유명해지지 않고 보통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다툼은 결국 그들의 이혼으로 끝이 났다. 어머니는 비남의 능력을 끝까지 비밀로 하고 싶었고 그의 비밀을 아는 다른 유일한 사람인 그의 아버지는 그가 가끔 골프를 치러나가거나 중요한 여행 때 아들을 부를 수 있는 것을 조건으로 아들의 비밀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도 그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고 실제로 한 번도 비에 대해 경험해 보지 못한 그는 그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그때부터 방송이나 영화 등의 스크린에서 보이는 비 영상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비에 관한 노래와 시, 그리고 소설들까지도. 그가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는 기상과 비에 대해 세계 제일의 전문가가 되어있었고, 최연소 기상학과 대학교수로도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인태는 비남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 아닌 베드 엔딩으로 결말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비남은 기상과 비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지만, 결국 실제로 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세간의 많은 사람들이 비를 경험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박사이고 교수라는 것에 사정없이 비판을 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그는 모든 명예를 비롯 그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정신질환 약을 매일 먹어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으로 인태의 상상은 끝이 났다. 집 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서는 인태는 무척 행복해졌다. 누군가 불행해지면 누군가는 행복해진다. 그는 우산을 챙겨 가방에 넣기는 했지만 오늘은 그의 상상 속의 비남을 떠올리며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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