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지구 인류의 절반을 없애버린 이 무서운 사건의 시작은, 불과 일 년 전 루마니아의 한 동굴을 불법적으로 관광하던 관광객 몇 명이 박쥐에게 물리면서부터였다. 그 관광객들은 루마니아를 관광하다가 만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로 여행을 좋아해서 박쥐에 물린 이후에도 약 한 달간 전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그 들은 자신의 집, 혹은 자신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죽어갔다. 그들이 조용하게 죽었다면 아마도 지구의 인류는 전부 소멸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 그들은 죽기 전,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히드라처럼 침이 많이 튀기는 기침을 하고, 사람을 물어 피를 빨아먹기도 했다. 그리고는 온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며 그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죽어갔다. 여하튼 그들은 나름대로 요란하게 죽어갔고 세계에 비슷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WHO는 이 병의 이름을 루마니아와 드라큘라에서 따와 드루병이라고 명했다. 초반에는 그냥 그런 전염병이겠거니 했던 이 병은 생각보다 전염률도 빠르고 사망률도 높아서 전 세계 사람들이 긴장을 했다. 게다가 잠복기도 무려 한 달. 보건기구에서 알아낸 이 병이 전염되는 이유는 공기와 침등으로, 그리고 간혹 물려서 라고 판단했는데 그것에 방어하기 위한 수단은 마스크뿐이었고 그것에 대해 발표하는 순간 순식간에 전 세계의 마스크 공장들은 마스크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마스크 사재기가 시작되었고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모두 정부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정부 역시 공장이 아니기에 마스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었고 결국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서서히 스스로 외출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업종은 허세스럽게 자신들의 몸매를 뽐내며 옷을 팔던 인터넷 쇼핑몰 업자들과 모델들, 술집, 음식점들로 이루어진 자영업이었다. 사람들이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게 되니 그들은 자연스레 굳이 멋지거나 예쁜 옷을 입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외식보다는 집에서 먹는 것이 더 안전했기 때문에 대부분 식자재를 배달해 집에서 조리를 해 먹었고 방역복을 입은 배달원들이 비싼 돈을 받고 식품을 배달해주었다. 일부 가정이나 아파트에서는 단체로 공장 직배송을 해 배달 단가를 낮추기도 했다. 순식간의 전 세계의 패션업계도 마비되었는데 <구찌>나 <에르메스>하면 눈 뒤집히던 전 세계의 된장들도 디자이너 브랜드를 안 입기 시작했고 심지어 카피 제품이라도 사서 입어보자던 일반 서민들까지도 <샤넬>의 카피 제품인 <살껴?> 나 슈프림의 카피 제품인 <슈틀려 > 조차도 안 입게 되었다. 그러던 중 큰 사건이 터졌는데 바로 한국의 한 교회에서 이 병에 걸린 목사가 약 한 달간 이 병에 걸린지도 모르고 목회활동을 했던 것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였던 그 교회는 한국의 기독교 보호와 (종교 차원의) 그들의 생계를 위해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두세 달간 그것을 비밀로 했고 그로 인해 무려 십만 명이 넘는 드루병 확진자와 이후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 세계의 사람들과 한국 다른 종파의 기독교에서도 그 교회를 이단시 치부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에서 가장 큰 정파 기독교로 지금까지 정평이 나있던 그 교회의 십만 명 가까운 교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라며 종교전쟁을 선포했다. 교인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이에 공포를 느낀 전 세계의 나라들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타국의 비행기와 배의 입출국을 막았다. 어떤 나라는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것도 불법으로 정하고 벌금형에 처했다. 한 장에 100불 가까이 오른 마스크 가격은 각 나라에서 생산해 자국민들에게만 뿌렸고, 어느새인가 공장 근무를 원하지 않는 근무자들 때문에 곧 대부분의 마스크 공장은 문을 닫았다. 이때 즈음 발견된 하나의 사실이 인류의 생태계를 바꾸었는데 드루병에 걸린 사람은 햇빛을 쬐지 않으면 신체 내의 바이러스 운동이 늦춰져서 2-3년 이상도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백신이 빨리 만들어지길 바라며 더 이상 야외활동을 하지 않고 커튼으로 모든 창을 막은 채 생활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전 세계 나라들의 정부라는 시스템은 전부 무력화되었다. 어찌 보면 미친 듯이 밖을 돌아다니며 죽음을 불사하고
"끝이 다가왔노라!!!"
고 큰 소리로 외치며 전도를 하는 한국식 기독교에 다시 빠지는 사람도 있었고, 그 말에 전도되어 지옥 가기 싫다며 믿음, 소망, 사랑을 외치기 시작하는 스님들도 더러 있었다. 이미 신선한 음식은 사라진 지 오래며 사람이 많은 뉴욕이나 런던, 파리, 서울 등의 도시를 피해 시골의 전원주택에서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로 인해 전 세계의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도시는 시골보다 사람이 더 없게 되었다. 이 당시 유행하던 말이 <죽 환도>인데 이 것은 죽지 못해 환장하는 도시인들의 줄임말이다. 영어로는 <PCPD> People in the city prepared to die.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누군가가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기 바랐지만 그 연구를 해야 할 연구원들 역시 그들과 같은 생각으로 집에서 티브이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 인류는 에이즈, 암, 메르스, 사스, 심지어 감기의 백신도 아직 만들지 못할 정도로 바이러스에 무지했다. 30살까지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공부한 그들을 (많은 의대 등의 대학생들) 위해 많은 돈을 썼던 그들의 부모와 정부는 얼마나 쓰잘대기 없는데 돈을 낭비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의 인류가 집에서만 있고 크게 움직일 일이 없기 때문에 많은 칼로리를 소모할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영양제와 최소한의 식량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었고 각자 집에서 컴퓨터로 일을 했기 때문에 즐길 거리 또한 컴퓨터를 통한 소셜이나 가상 게임들이 발달되었다. 돈도 필요 없었다. 거래는 소셜과 가상공간의 화폐로 대체되었다. 심지어 교회나 절, 성당도 가상공간에서 다닐 수 있었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길게 살고 싶어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했고 대부분의 인류는 그 생활에 금세 적응해 나갔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람들은 종교에 많이 의지하게 되는데 초중반에는 문밖을 다니며 큰소리로 전도를 하던 한국식 기독교도 어느새 죽어서의 영생의 삶보다 현세에 오래 살고 싶은 인류의 기본적인 본성 때문인지 다들 집 안에 들어가 조용해졌다. 어느새인가 죽음을 대비하는 종교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인류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종교들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목탁 잘 두드리는 법, 시간 버리기, 칼로리를 최소화하며 상상하기 등을 영상으로 가르쳐주는 목사들이나 주술사들 생겨났다. 미래의 인류를 위해 구약성경에 나온 가족 간의 성교를 추천하는 이단도 생겨났다. 점차 인류는 움직임이 최소화되어 네바다 51에나 등장하는 외계인처럼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어두운 곳에서 모니터 등을 잘 보기 위한 눈만 커지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기관들은 작아지고 필요한 부분만 커져갔다.
바람이 차다.
하늘은 파랗다.
주변에서는 조금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녹색으로 가득한 잔디 위에 잠시 눕는다.
나는 이틀 전에 밖으로 나왔다.
나는 길어야 한 달 밖에 못 살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이상을 살아갈 수도 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좀 더 인간답게 가치 있게 살고 싶었다.
나는 희망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이 곳에서 만나기를.
내가 누워서 보고 느끼고 있는 실. 존. 하는 이 세상에서 잠시라도 우리가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