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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와의 협상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by 마늘






캘리포니아에 있는 허모사비치에 몇 달간 머물 때의 일이다. 이 곳은 망할 놈의 '라라 랜드'라는 영화 덕에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간 쭉 산책해오던 나만의 산책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도 많아지고 시끄러워져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수도, 가볍게 뛰기에도 무척 불편해졌다. 게다가 많아진 음식점들과 그 음식점들에서 나오는 쓰레기들, 그 악취까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는 봄부터 가을까지 날씨가 무척 좋은 편이기에 나는 늘 문을 열고, 고요한 가운데 멀리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늘 편하게 숙면할 수 있던 이곳에 최근 들어 관광객보다, 그리고 쓰레기의 악취보다 더한 최악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것은 밤마다 왱왱 아니, 왕왕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모기다. 분명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쓰레기가 늘어나니 이 곳으로 몰려든 것이겠지. 나는 언젠가부터 이 모기들 때문에 매일매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오래간만에 나를 만나는 친구들이 <다크서클 킴>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잠을 못 자 다크서클이 심해졌다. 나는 이 모기들과 관광객들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가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미 집주인에게 어느 정도의 디파짓도 해놓은 데다가 벌써 이동을 하기에는 이 곳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모기의 공격에 참기 힘들어진 나는 예전에 여자 친구를 위해 한 번 거래했던 모기 왕에게 연락을 했다. 모기 왕은 나의 전화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었고 지체 없이 협상을 시작했다.

"이봐요, 나도 잠 좀 잡시다. 대체 원하는 게 뭐길래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거요? 원한다면 내 피를 일주일에 1리터씩 세숫대야에 받아 놓을 테니 그냥 그 피를 마음껏 드시오. 그리고 내가 자는 건 방해 좀 하지 않았으면 하오."

모기 왕은 아주 작은, 거슬리는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내가, 아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고 평화적이오. 당신을 비롯한 모든 인간, 동물들이 일주일에 한 번 우리의 배를 충족시킬 만큼의 피를 이 곳, 우리들이 살기에 좋은 허모사비치의 해변에 놓아두는 것이오."

나는 대답했다.

" 내가 인간을 대표할 순 없소. 이건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함께 의논해 결정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결정될 때까지 내가 단잠을 못 잘 수는 없소이다. 뭐, 다른 방법이 없겠소?"

모기 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핑'이라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나는 화가 났다. 오늘 밤도 잠을 못 잘 것이 뻔했다. 나는 예전 여자 친구를 위해 썼던 협상카드를 다시 꺼내기로 한다.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지만, 이런 불면증에 계속 시달리는 것보다는 그냥 죽는 것이 나을 것 같기에 조심스레 그것이 들어있는 작은 상자로 손을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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