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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는 아이들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by 마늘 Sep 09. 2020






 혹성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인해 플랫폼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최근 뉴스에 이 혹성의 수명이 앞으로 십 년 밖에 안 남았다고 보도가 되었었다. 게다가 지금 도착한 기차 한 대가 이 혹성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차였기에 플랫폼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혹성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이 기차를 나누어 탈 지에 대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이 중 가장 머리가 크고 눈이 튀어나온 데다가 머리까지 민머리인 한 사나이가 청중들에게 외쳤다. 

"이 기차에는 우리 모두가 탈 수 없소. 그러나 한 가정에 한 명 씩을 탈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입이 튀어나왔지만 동그란 안경을 맵시 나게 쓴 다른 사나이가 말했다. 

"우리 가족은 무려 열 명이란 말이오. 요즘, 혼술 , 혼밥 하는 싱글들이 많은데 나처럼 가족 수가 많은 사람들은 불리하오." 

두 번째 사나이의 이야기에 대중들은 공감해하는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멀리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목소리지만 어릴 때부터 성악을 한 건지 울림이 좋은 목소리였다. 후세에 많은 이민족들이 이 '저기...'에 대해 민족 대이동의 울림이라고 전할 정도였다. 

"저기... 저기... 10세 미만의 아이들만 기차에 태우면 어떨까요. 그리고 남는 자리는 20세, 또 남으면 30세 순으로요. " 

순식간에 플랫폼은 조용해졌다. 무려 일 년 간이나 조용했다. 너무 조용한 탓에 자신들의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호상으로 죽는지, 술을 마시다 죽는지 모두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또 일 년이 지났다. 잘은 모르지만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던 사람 중 절반이 배가 고파 죽었다. 그 적막을 깨며 검은 머리를 삔으로 꼽아 사과머리를 한 여자가 손톱을 이빨로 뜯어가며 말했다. 


"이러다가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이 기차를 타봐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다른 혹성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어차피 그냥 다 죽게 됩니다. 골로 가는데 순서 없으니 즐겁게 삽시다. 만에 하나의 운명에 맡기고 삶을 연장시켜보고 싶은 사람들은 기차에 탄 뒤 기차를 출발시키고, 나머지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 남은 팔 년간 흥청망청 신나게 놀아봅시다."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고, 일부는 빠르게 기차에, 일부는 플랫폼의 죽은 시체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이 혹성에 남아 8년간 신나게 흥청망청 노는 삶을 선택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즐거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지금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다. 시신을 치우는 할아버지가 시체는 치우고 춤을 추라는 소리를 하시길래 잠시 여러분께 글을 쓰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놓고자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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