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들어가는 글

by 초부정수


'낭만포차'에서의 완벽한 하루, 한강 유람선을 타고 보는 '낭만적인 서울 야경...'

낭만이라는 단어는 주로 이런 식으로 사용됩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분위기에 보고만 있어도 사랑의 감정이 스며 나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19세기 유럽의 문학과 예술 사조(思潮)를 일컫는 낭만주의는 조금 다릅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사용되던 ‘romantic’이라는 형용사는 ‘romance’라는 명사에서 비롯된 단어인데, ‘romance’는 어떤 위대하고 전설적인 사람이나 사건을 다룬 시(poem) 또는 이야기(story)를 말합니다. 이러한 시와 이야기는 ‘로망스어(Romance Language)’로 기록되어 있지요. ‘로망스어’란 라틴어에서 파생된 방언과 같은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라틴어의 공통성을 잃고 서로 통하지 않게 된 다양한 언어들입니다. 이런 로망스어가 근대 국가의 성립과 함께 국어로 채택되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등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아서 왕 이야기>로 잘 알려진 중세 영국의 ‘아서 왕의 전설’을 영어로 ‘Arthurian Romance’라고 합니다.


결국 17세기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형용사 ‘romantic’은 현실적인 일상을 훌쩍 뛰어넘은 전설적이고 위대하며 환상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19세기 문예사조를 ‘낭만주의’라 했습니다. 계몽주의와 고전주의가 중요시해 온 형식보다는 내용과 개인의 가치관을 더 중요하게 반영하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감정의 표현을 절제하기보다는 극도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한 문학과 예술 사조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개 낭만주의 작가나 음악가들의 작품들은 낭만포차나 서울 야경이 주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감정과 달라서 대개 극적이고 비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은 로맨스를 주제로 하지만 호르몬 충만한 격정적인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이 그대로 전달되어 가슴이 아릿아릿하거나 심장이 간질간질한 느낌과는 다릅니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철학자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자연인(natural man)을 외친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는 왕, 귀족, 교회 등 기존의 모든 권위를 비판했는데, 만약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아마 불태워져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낭만주의라는 사조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선입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浪물결 랑과 漫부질 없을 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낭만이라는 단어는 일본식 한자어입니다. 그런데 표의문자인 한자를 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의 의미는 고사하고 아무런 뜻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영문학자인 나스메 소세키夏目漱石가 프랑스어 roman(로망)을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로망과 비슷한 발음인 ろうまん(ROUMAN)을 음차 하여 만든 일본식 한자어이기 때문입니다. 메이지 혁명 시대부터 일본의 지식인들은 외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번역할 필요도 없고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이런 단어를 많이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간, 일본은 浪漫이라 쓰고 ‘로망’으로 읽으니 원래 의미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만들어 놓은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낭만(浪漫)’이라 쓰고 말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글의 제목을 청계천 낭만이 아닌 청계천 로망스로 한 이유입니다. 청계천은 수 백 년간 조선의 수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온 개천이자 현재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시민들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어 또 함께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청계천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과 역사를 모두 안고 흐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흘러 강과 바다로 나아가길 기대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아름답지만은 않으며 좌절과 고통도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와 우리 자녀 세대를 위한 위대하고 멋진 이야기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너무 거창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오래된 친구들과 커피 한 잔 마시며 할 수 있는 편안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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