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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야 Apr 30. 2023

나이 든 버드나무에게





나이 든 버드나무에게


너는 내게 항변할지도 모르겠어. '난 나이 들지 않았어!'라고 말이야.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 네 밑동이 가장 굵잖아. 너를 한 아름에 안아본 적은 없고 늘 멀찌감치 지나가며 눈으로만 둘레를 재어보지만 말이야. 언젠가 네 몸통을 두 팔로 가득 안아보고 싶어. 굵고 거친 나무줄기가 손끝에, 내 팔에, 살갗에 닿는 느낌은 어떨까? 어떤 나무는 약간 차갑게 느껴지고 또 어떤 것은 따뜻하기도 하던데. 버드나무 너는 어떤 느낌일까. 나무를 안고 줄기를 만질 때 나는 너는 나와 다른 존재라는 걸 확실히 느끼게 된단다. 거친 수피는 길고 긴 세월로 인해 깊이 팬 주름 같아 순간 경외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너를 처음 본 건 몇 년도 더 된 일이야. 넌 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네가 서 있는 곳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자주 버스를 탔어. 바로 옆 굴다리를 지나 잔치국수를 먹으러 갔고 최근에는 쌀국숫집에도 자주 갔었거든. 한 2년 전인가 가을에 무자비하게 가지치기를 당한 너를 보았을 땐 슬프고 안타까웠지. 난 네가 그대로 시들어 죽어버리면 어쩌나 내내 마음을 졸였어. 가을, 겨울이 지나고 초봄까지도 말이야. 그러다 다시 줄기가 나오고 새싹이 돋아나 너는 올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구나. 너는 다시 살아난 거야. 아니지, 늘 살아있었다고 해야겠구나. 뭉툭해진 가지 끝에서 길고 가느다란 줄기를 수십 개나 내었지. 촉수처럼 보이기도 하는 가는 줄기들을 말이야. 마음 졸였던 그 시간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네. 


지난 주말에 차를 타고 네 옆을 지나가는데 줄기마다 작은 꽃들이 달려있더라. 연둣빛의 작은 꽃들. 너에게 별 관심이 없었을 때 네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도 잘 몰랐어. 너는 암그루일까, 수그루 일까. 네가 암그루라면 씨앗을 멀리 보낼 솜털을 잔뜩 만들어 매달고 있겠지. 내일 퇴근길에 네 모습을 유심히 살펴봐야겠어. 사람들이 봄에 눈처럼 날리는 버드나무의 솜털 때문에 괴로워해서 많은 버드나무가 잘려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열매가 맺은 뒤 씨앗을 멀리 보내기 위한 솜털을 꽃가루라고 오해한 모양이야. 옷에도 달라붙고 눈에 들어갈까 걱정도 되니 그랬겠지. 


누구는 봄에 볼 수 있는 눈꽃이라고 낭만을 떠올리지만 누구는 알레르기를 염려하며 네 솜털(종모)을 미워하지. 옛날 사람들은 버드나무가 물을 정화해 주기에 우물가에 너를 심곤 했어. 상처 난 곳이 있다면 솜털을 붙여 피를 멎게 하기도 했지. 네 뿌리로는 이제 아스피린의 원료를 만들고 있어. 솜털로 오해가 생겨나기는 했지만 너를 싫어하기는 쉽지 않을 걸. 길게 늘어뜨려 바람결에 흔들리고, 바람 따라 머무는 유연하게 찰랑이는 네 가지들을 미워할 수 있을까. 난 그 흔들리는 가지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참 좋더라.


물가를 좋아하는 버드나무야, 물길은 없지만 우리 동네에서 너를 만날 수 있어 참 다행이야. 

올해는 네 가지가 많이 잘려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랫동안 네가 그곳에서 살아남아 

고요하게 바람의 방향을 일러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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