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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야 May 28. 2023

가로수가 될 수 없는 아까시




이팝나무가 요즘 가로수로 인기인가 봐. 새로 생긴 도로를 지나는데 이팝나무 꽃이 끝도 없이 보이더구나. 도로를 따라 도심지 밖으로 가는데 이팝나무 뒤에 또 하얀 꽃을 주렁주렁 매단 나무가 보이지 않겠어? 이 나무는 어찌나 생명력이 뛰어나고 번식을 잘하는지 가로수 바로 옆에, 단차가 있는 도로 둔덕에, 농경지나 마을 중간에 어디서든 가지를 뻗고 꽃을 뽐내고 있었어. 이 나무의 이름은 아까시야. 


5월은 장미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어. 장미꽃은 모양과 색도 화려하지만 은은한 향기가 참 좋지. 혹시 아까시 꽃 내음을 맡아보았니? 아까시 꽃이 근처에만 있어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장미가 은은한 향이라면 아까시는 진하고 달큼한 향이야. 꽃은 또 어찌나 많이 피는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꿀이 바로 아카시아꿀이지. 5월의 산천을 수놓는 아까시꽃에서 만들어지는 꿀인 거야. 달콤한 꽃향기만큼이나 꽃 안에 담고 있는 꿀도 많은 모양이야. 포도송이 같은 꽃을 수도 없이 달고 짙은 향기를 풍기며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아까시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너는 왜 가로수가 되지 못했니?'라고 말이야. 이팝나무가 길가에 도도하게 줄을 지어 서 있는데 아까시는 거기 끼지는 못하고 여기저기서 가로수가 된 나무를 부럽다는 듯 바라보는 것 같아. 


가로수는 정확히 말해 길 가에 일정한 간격으로 심긴 나무를 말해. 가로수를 규정하는 여러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중 두 가지만 말하자만 첫째, 도로나 보도를 따라 심길 것, 둘째,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심길 것! 의도라는 것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기능적 측면과 관련이 있어. 어떤 나무가 인간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수피(줄기의 무늬)나 꽃, 잎이 아름다워 볼거리가 있어야 하고 여름엔 짙은 그늘도 만들고 공해에 강하며 공기 중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능력 같은 것을 말하는 거야. 나무가 참 많은 일을 한다고? 이 외에도 나무가, 식물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은 아주 많지. 


아까시는 우리에게 꿀을 주는 대표적인 밀원 식물이야. 사람들이 아까시나무를 새로 심지 않고 오히려 베어내기도 해서 많이 사라지고 있어. 얼마 전 뉴스 기사를 읽었더니 가로수로 많이 심는 백합나무가 새로운 밀원식물로 떠오르는 모양이더구나. 아참, 왜 아까시꿀이 아니고 아카시아꿀인지 궁금하지? 아카시아는 따뜻한 나라에서 일 년 내내 푸른 잎을 달고 사는 상록수로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는 식물이야. 아까시나무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후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다소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야. '동구밭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로 시작하는 노래도 한몫했지. 정확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는 않지만 아까시 꽃내음과 달콤한 꿀은 언제나 그대로일 거야.     


아까시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도움은 또 있어. 나는 어릴 적에 무덤 가에 아까시나무를 심으면 나무뿌리가 관을 뚫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건 사실이 아니야. 아까시는 뿌리를 땅으로 깊이 뻗지 않는 나무거든.) 우리 산을 점령하고 다른 나무들이 살 자리를 빼앗는 못된 나무라는 이야기도 들어봤지. 사실일까?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나무들이 거의 사라졌어. 식민지 수탈,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나무란 나무는 죄다 잘리고 불타버렸다지. 봉우리가 뾰족하니 산은 산인데 나무가 한그루도 없는 모습을 상상해 봐. 민둥산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 1960년대부터 정부에서 민둥산에 열심히 나무를 심은 거야. 몇 십 년 만에 우리 산천은 푸른 빛깔을 되찾았지. 우리나라의 이 놀라운 조림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것이래. 헐벗은 산에 처음으로 심긴 나무 중 하나가 아까시나무야. 아까시나무를 새로 심지는 않고 있으니 지금 산이나 들에서 볼 수 있는 아까시나무들은 60년대에 심긴 것이거나 그 나무들의 후손일 거야. 


아까시는 볕이 잘 드는 땅에서 잘 자라. 민둥산에는 그늘진 곳이 없으니 아까시가 자라기 딱 알맞은 조건이네. 게다가 거름기가 없는 땅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강인함을 지녔어. 아까시 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열매를 한 번 찾아보렴. 콩 꼬투리 모양을 하고 있단다. 나무에 왠 콩이냐고? 아까시나무도 콩과 식물의 하나거든. 콩과 식물은 뿌리에 뿌리혹이라는 걸 달고 살아. 거기에 사는 미생물들이 공기 중의 질소라는 성분을 땅으로 자꾸 끌어오는 거야. 이 질소가 식물이 자라는데 굉장히 중요한 영양소야. 그러니 땅이 척박한 곳, 누가 따로 거름을 주지 않은 곳에서도 콩과 식물 아까시는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었어. 


척박한 땅에 맨 처음 자라나는 식물을 개척자 식물이라고 불러. 이런 개척자 식물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단다. 아까시 덕분에 땅에 제법 비옥해지면 소나무나 참나무 같은 다른 식물들도 산에 자리를 잡고 건강히 살아갈 수 있어. 그런데 어쩌나? 이 나무들은 아까시나무 보다 훨씬 빨리 자라고 키도 크네?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는 볕보다는 그늘이 많지. 그러니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 아까시는 햇빛이 충분하지 못해 서서히 시들어가겠지. 그러다 숲에서 사라지게 되는 거야. 그래서인지 지난번에 시골길 옆에 아까시나무가 참 많더라. 다른 나무들이 살지 못하는 그늘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곳, 비탈지거나 좁은 그런 자리에서도 꿋꿋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어. 


아까시나무의 꽃말은 '죽음도 넘어선 사랑'이래. 후손 나무들을 위해 거친 땅을 일구고 사라지는 모습과 참 잘 어울리는 꽃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까시에 대한 오해들이 여전히 건재하지만 왠지 아까시는 그런 말들을 듣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 같아. '죽음도 넘어선 사랑'이라니, 얼마나 강력한 마음일까. 오해나 편견의 말 따위에 사랑이 흔들린다면 감히 개척자나무로 살기 어려울지 모르겠어.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긴 세월을 버티고 조용히 생을 마감하며 자신을 평생 지탱하고 키워준 땅으로 돌아가. 이 과정은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고 귀한 희생이기도 하지. 나무의 높고 귀한 모습 앞에 왠지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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