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소나무 가로수길이 있어. 소나무 가로수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아예 없지는 않아. 가로수로 소나무는 어떨까. 큰 그늘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꽃이 아름답거나 공기 중의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능력도 별로야. 오히려 공해에 약해서 도심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은 나무라고 해. 내가 소나무였더라도 도시의 거리나 공원보다는 산의 능선에서 살고 싶을 것 같아. 오늘은 이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길가에, 공원에 서 있는 소나무의 잎이 갈색으로 변하는 걸 보았니? 소나무는 늘 푸른 나무이지만 잎을 갈아. 초록 잎을 그대로 바닥에 떨구지 않고 갈색으로 변한 오래된 잎을 떨구지. 잎이 넓적한 활엽수들은 대부분 늦가을이 되면 일제히 잎을 다 떨어뜨려. 가지만 남은 채로 겨울을 보내게 되지. 겨울에는 뿌리가 물을 충분히 흡수하기 어려운데 널찍한 잎이 수분을 자꾸 공기 중으로 내보내면 나무는 물이 더 부족해지겠지. 잎을 매단 줄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물이 추운 날씨에 얼어버린다면 줄기가 쩍쩍 갈라지는 일도 있을 거야. 그러니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잎을 떨어뜨리고 것이란다.
소나무는 어떨까? 소나무는 겨울이 아니라 새 잎이 난 2년 뒤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잎을 떨궈. 추운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다는 이야기지. 소나무처럼 잎이 바늘모양인 침엽수는 활엽수에 비하면 추위에 무척 강하단다. 첫째, 잎이 바늘 모양이라 증산 작용-나뭇잎에서 수분이 증발되는 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둘째, 몸 안에 흐르는 특별한 액체가 줄기가 어는 것을 막아줘. 소나무 줄기에 상처가 나면 찐득한 진액이 나오는 걸 보았니? 그 송진 덕분에 줄기가 쉽게 얼지 않는단다. 우리 조상들은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지니고 있는 소나무를 멋지다 생각했지. 혹시라도 지나다 소나무를 만나면 나뭇잎을 잘 살펴보렴. 늘 푸르고 당당한 자태지만 한쪽 구석에는 갈색 잎을 매달고는 조용히 잎갈이를 하는 중일 테니 말이야.
송진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어.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일제는 비행기 연료로 쓰기 위해 송진이 많이 필요했어. 송진을 가공해서 기름으로 만들어 썼대. 우리 산천에 있는 소나무에 상처를 내고 끝도 없이 송진을 빼앗아갔지. 1970년대에는 송진을 외국에 수출했어. 그렇게 십수 년의 세월 동안 소나무 줄기에 난 상처는 아물 틈이 없었을 거야. 송진이 불이 잘 붙는 물질이라는 걸 알고 있니?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긴 막대에 천을 둘둘 감고 송진을 바른 뒤 불을 붙여 횃불로 쓰는 장면이 있어. 잘 마른 솔잎이나 소나무 가지는 아궁이에 불을 때던 시절 불쏘시개로 쓰이기도 했지. 최근 몇 년간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많이 났었지? 산불이 심하게 나거나 번진 곳에는 어김없이 소나무숲이 있었어. 소나무는 송진 성분 때문에 쉽게, 빨리 타버리기 때문에 소나무 숲은 참나무, 아까시나무로 이루어진 숲보다 훨씬 불이 빨리 번져. 얇은 솔잎은 멀리 날아가며 불씨를 더 퍼뜨리기도 해.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산불에 아주 취약한 나무인 셈이지.
일제의 수탈, 산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 산에는 소나무가 아주 많아. 기후도 알맞지만 예로부터 우리 민족 최애 나무가 소나무였거든. 사랑한 만큼, 필요한 만큼 많이 심고 가꾸어왔어. 소나무를 왜 그리 사랑했느냐고? 우리 민족에게 '일생을 소나무와 함께 했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란다. 태어났을 때 새끼줄에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매달고, 보릿고개에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지. 소나무로 집을 짓고 숯을 만들어 썼으며, 죽어서는 관을 짜는데 소나무를 사용했어.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했던 거북선도 소나무로 만든 거였지.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소나무를 관리하는 법, 소나무를 허락 없이 함부로 베어 쓰는 처벌 하는 법까지도 있었다고 해. 사람들은 한평생 소나무가 필요한데 나무는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 그 수요를 감당해 내기 쉽지 않으니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관리를 한 거야.
소나무라는 이름은 솔나무에서 유래되었어. 소나무의 잎을 솔잎, 열매를 솔방울이라고 해. 여기서 솔은 수리, 우두머리라는 뜻이야. 그러니 소나무는 나무 중의 으뜸, 나무들의 우두머리 나무인 거야! 세조 시대에는 소나무에 정이품벼슬을 내린 적도 있어. 애국가도 소나무로 시작하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말이야. 바람이나 서리가 와도 늘 푸른 잎을 보여주는 소나무를 우리 조상들은 곧은 마음, 꿋꿋한 기백이 있다고 칭송하곤 했어. 소나무는 십장생에도 이름을 올린 대단한 나무라고 할 수 있지.
높은 벼슬에 오르고, 십장생에, 애국가에 등장하고, 여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나무 1위로 언급되지만 소나무의 영화도 옛날에 비하면 빛이 바랜 것 같아. 우리는 이제 금줄을 매달지도, 소나무로 집이나 배를 짓지도, 껍질을 벗겨 떡을 해먹지도 않으니까.(가끔은 누군가 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당연히 그렇게 사는 시대는 아니지.) 소나무는 우리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중이야. 필요로 하는 이가 적으니, 누가 베어낼 일도 줄어들면 숲에서는 빽빽이 자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종종 번지는 산불로 인해 수십 년간 자란 소나무 숲이 순식간에 재로 변하기도 해. 소나무를 죽게 만드는 병충해는 기후위기로 점점 활동범위가 넓어지는 중이고 말이야. 숲의 천이 과정(숲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소나무는 결국 참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거든. 소나무는 햇볕이 잘 드는 땅에 자라. 거름기가 별로 없는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숲이 처음 생기는 즈음에는 쑥쑥 잘 크지. 하지만 흙이 점점 비옥해지면 참나무를 비롯한 다른 넓은 잎 나무들과 키 경쟁에서 지게 된단다. 다른 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에서 소나무는 잘 자라지 못해. 경쟁에서 밀리니 점점 자취를 감추는 거야.
지구의 온도가 점점 높아져서 기후가 아열대로, 열대로 바뀐다면 소나무의 자리는 점점 더 빨리 사라지겠지. 기온이 낮은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소나무가 한 발짝 이동한다는 건 씨앗에서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정도의 나무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나무들은 기후변화의 속도에 맞춰 이동할 수 없어. 공해, 병충해, 산불, 숲의 천이, 기후위기까지 겹쳐져서 소나무는 이 땅에서 언젠가 영영 사라지게 될 거야. 발견된 화석을 조사해 보니 소나무는 중생대부터 우리나라에 살았다고 해. 태고의 긴 시간을 함께 해 온 소나무가 너른 그늘을 만들지 못했다고, 송홧가루를 날린다고, 산불을 번지게 했다고 너무 나무라진 말아 줘. 우리는 소나무와 조금씩 헤어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