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가 정신없이 지나갔어. 주말에 공원에 갔더니 정말 온갖 꽃이 한 데 피어 있지 뭐야.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는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 조팝나무, 목련까지. 내가 아는 봄꽃의 대부분이 지난 한 주 동안 피어난 것 같아. 꽃이 피는 것은 지역마다 동네마다 순서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어. 어디까지나 그 순서라는 것이 있지. 하나가 피고 지면 다른 하나가 피고, 봄꽃은 이어달리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이 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피어나다니! 그것도 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꿀벌의 모습은 잘 보이질 않는데 말이야. 오늘 밤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고 해. 동시에 피어났던 꽃들이 툭툭 떨어지겠지. 비 온 뒤 따라올 뒤늦은 꽃샘추위, 그리고 그 뒤에 깨어날 수많은 곤충들에게 부디 충분한 꽃과 꿀이 남아 있기를.
일부러 가로수를 보러 어딘가에 찾아간 적이 있을까? 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봄이 되면 사람들은 가로수를, 그중에서도 벚꽃을 찾아 나들이를 떠나지. 벚나무는 공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가로수로도 많이 심겨있어. 우리 동네를 살펴보니 도로가에 사는 벚나무는 없지만 바로 옆동네만 가도 예쁜 벚나무 길을 만날 수 있더구나.
벚나무는 왜 벚나무일까. 사과나무는 사과가 열리고 배나무는 배가 열리지. 벚나무도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의 이름을 따서 벚나무야. 벚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앙증맞은 작은 열매가 버찌거든. 버찌가 열리는 나무, 버찌나무가 벚나무가 된 것이지. 벚나무의 영어 이름은 cherry tree야. 우리가 먹는 체리보다 좀 작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벚나무 열매도 체리의 종류야. 벚꽃은 cherry blossom! 벚꽃이라는 우리말 대신에 '체리블라썸'이라는 말도 자주 보여. 왠지 달콤하고 화사한 낭만 같은 것이 떠오르는구나.
벚나무는 한 나무의 꽃이 거의 한꺼번에 피어나. 한 일주일 정도 꽃이 지속되다가 후두두두 꽃비를 내리지. 한참 꽃이 달려있을 때는 화사한 꽃덩이라 탐스럽게 달려있는 모습이 비현실적이어서 꼭 한 번씩은 '이거 가짜 꽃 같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 연분홍빛의 탐스러운 꽃뭉치들이 주렁주렁 다닥다닥 달려있는 모양새가 꼭 누가 일부러 꽃을 달아놓은 것 같다니까. 일주일쯤 지나서 꽃비가 내릴 때는 아쉽기도 하지만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바라보게 돼. 꽃은 피어날 때, 한참일 때 아름답지만 벚나무는 유독 꽃이 질 때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해 줘. 떨어진 꽃잎은 금세 시들지 않고 한동안 길가에 남아 바람결에 흩날리지.
꽃이 지고 나면 언제 돋아났는지 모를 작은 잎사귀들이 줄기에 가득해. 분홍빛의 나무가 하루 밤 사이에 초록 나무로 바뀌어 있는 건 마술처럼 느껴질 정도야. 벚나무의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모양이 있어. 벚나무 잎을 만나게 되거든 잎자루와 잎 사이를 잘 살펴보렴. 아주 작은 혹 같은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꿀샘이라는 건데 정말 달콤한 꿀이 들어 있대. 신기한 건 이 꿀샘의 모양이 어떤 한 종류의 곤충이 먹기에 딱 좋게 만들어졌다는 점이야. 바로 개미! 개미는 벚나무에 오르고 내리며 꿀샘에서 단물을 가져가지. 그리고 다른 곤충들이 벚나무의 잎을 갉아먹거나 해를 끼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서로 윈윈 하는 것, 바로 공생 관계지.
꽃잎만큼이나 무성한 잎을 내며 벚나무는 여름을 보낼 거야. 개미들도 부지런히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할 것이고. 가을이 되면 벚나무 잎은 한 그루 안에서도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갈색으로 화려하게 색을 바꿔. 하나의 잎에 여러 가지 색이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도 쉽게 찾을 수 있지. 벚꽃이 질 때의 황홀함만큼이나 가을 단풍이 든 벚나무도 우리 눈을 호강시켜 주겠지.
나이를 많이 먹은 벚나무의 줄기를 보면 베베 꼬인 아이스크림 모양이 떠올라. 굵은 몸통이 곧게 자라기는 하지만 꾸불꾸불 뭔가 꽈배기 같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부분도 많아. 줄기의 모양이야 나무의 특색이겠지만 벚나무의 기구한 사연을 들어보면 그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어. 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자생지로 밝혀진 나무야. 벚나무가 일본으로 어떻게 건너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벚꽃은 일본의 국화로 사랑받는 꽃이지. 일제는 창경궁(당시 창경원)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앞마당에 벚나무를 심어 유원지로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 민족을 모욕했어. 그때 심겼던 벚나무들은 그대로 뽑혀서 지금 여의도의 윤중로-서울 벚꽃 명소로 가장 유명하지 아마!-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에 옮겨 심어졌어. 일제 강점기, 해방기의 벚나무는 치욕이고 슬픔이었을 거야. 그런데 그 시대를 살았던 똑같은 나무들이 지금은 우리를 행복하고 즐겁게 해 주네. 내가 벚나무라면 이런 생각에 저런 생각에 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도 몸도 베베 꼬였을 것 같아. 그래서 줄기가 꼬였나? 벚나무의 마음은 사실 나도 모르지. 다만 분명한 것은 나무는 죄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