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 (Oriental arborvitae)
3월 6일은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었지. 한낮의 온도가 20도 넘게 올라간 날도 있었으니 지구의 온도가 많이 높아진 것 같아. 기후위기로 지구가 점점 더 더워지고 봄이 빨리 온다면 개구리도 더 일찍 기지개를 켜게 될 거야. 경칩날에 모든 개구리가 한꺼번에 깨어나는 건 아니야. 남부 지방으로 갈수록 기온이 높으니 남쪽 개구리는 좀 더 일찍 잠에서 깼겠지. 우리 동네 공원에 있는 웅덩이에도 개구리 알이 진작에 있었던 걸 보면 일찍 일어난 개구리들도 많은 것 같아.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개구리가 깨어나서 지내려면 먹이인 곤충들이 있어야겠지? 경칩에는 겨우내 땅 속이나 나뭇잎, 나무줄기 사이에서 몸을 감추고 겨울을 지냈던 벌레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시기이기도 해. 벌레들이 살아가려면 벌레들의 먹이가 있어야겠지? 여린 잎도 필요하고 꿀을 내어주는 꽃들도 필요할 거야. 경칩이 되면 개구리는 물론이고 겨울에 보이지 않았던 온갖 벌레, 곤충들, 풀과 나무의 꽃과 새싹을 볼 수 있게 되는 거지. 세상에 진짜 봄이 왔다는 거야.
나는 경칩이 되니 마음이 바빠졌어. 식물은 조용하잖아. 줄기 안에서 열심히 움틀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매일 바쁘게 살다 보면 나무에서 첫 싹이 돋아나고 첫 꽃이 피는 모습을 놓치기 일쑤거든. 나무들에서 꽃이 피고 잎이 나면 나무가 좀 더 볼만해지는 것 같아. 매일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겨울나무도 아름답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나무는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지.
온갖 나무들이 다투어 꽃과 잎으로 단장을 하기 시작하면 이제 늘 푸른 나무들에는 좀 덜 시선이 갈 것 같아. 상록수들은 얼핏 보면 1년 내내 한결같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변하는 풀과 나무들에 아무래도 눈길이 가게 되지. 상록수 입장에서는 좀 서운한 일일 거야. 오늘은 초록이 한참 모자라던 겨울 세상에서 초록을 보여주었던 측백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
집에 혹시 식물도감이 있니? 식물도감을 살펴보면 측백나무와 향나무, 두 나무는 가까운 데 나와있을 거야. 둘 다 측백나무과거든. 잎사귀를 비교해 보면 바늘 모양의 잎이 어딘가 많이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전체적인 수형은 물론이고 특히 열매가 달라. 측백나무 열매는 시간이 지나면 네 쪽으로 벌어져서 속에 있는 씨앗에 밖으로 드러나거든. 잎이 난 모양도 다르지만 향나무 여린 잎은 독특하게 바늘처럼 뾰족해. 공원이나 정원에 사는 향나무는 둥글둥글 예쁜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어. 아주 오래된 향나무는 줄기가 구불구불해서 전설에 나오는 나무같기도 해. 측백나무는 잎이 꼭 손바닥을 손뼉 치려고 펼쳐든 모습을 연상되게 하지. 넓적한 잎들은 위를 향하지 않고 옆을 봐. 측백나무는 향나무만큼 인공적인 모습으로 다듬지는 않아. 적당히 새 가지를 쳐주면 둥근 타원형의 모습을 유지하거든. 측백나무는 지난번에 만났던 사철나무와 비슷하게 흔히 심는 울타리 나무야.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공원 경계, 마당 경계, 건물 경계 같은 곳에 측백나무가 정말 많이 보이더구나.
측백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벌써 꽃이 핀 것이 있었어. 사철나무 꽃보다 훨씬 작은 꽃이야. 줄기 끝에 마지 줄기인 것처럼 달려있어서 정말로 자세히 보아야지만 눈에 띈단다. 작년에 여물었던 열매가 아직 달려있는 것도 찾아보렴. 측백나무의 열매도 솔방울 열매야. 4조각으로 벌어진 안에는 2~6개의 씨앗이 들어있지. 내가 만난 측백나무는 교회 앞 작은 화단에 있었는데 솔방울 열매가 아직도 많이 달려있더구나. 식물도 곤충이나 동물처럼 자기 자손을 남기는 일이 가장 중요해. 그게 삶의 이유이기도 하지. 측백나무도 열심히 열매를 맺어 그 안에 씨앗을 만들었을 텐데. 도시에서 제한된 자리, 시멘트로 덮인 도로 옆에 사는 식물들은 씨앗을 만들어도 자손을 남기기 어려워. 나무에서 떨어진 씨앗은 작은 화단 공간보다는 포장된 도로에 떨어질 확률이 높지. 바람에, 차바퀴에 휩쓸리거나 도로를 청소하는 빗자루에 쓸려 버려질 수도 있어. 도시에 사는 나무가 만든 씨앗은 씨앗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버려지기 쉽지. 그 모습을 상상을 하면 나는 마음이 좀 아파. 안쓰럽기도 하고.
어쩌면 그게 도시에 사는 나무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어. 나무는 하지만 자기가 만든 씨앗이 새싹이 되어 나무로 자라는지 안 자라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아.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열매는 맺고 가을이면 씨앗을 떨구지. 늘 묵묵하게 말이야. 측백나무는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진 나무였어. 잎과 열매를 먹고 신선이 되었다거나, 흰머리가 다시 검어졌다는 옛 전설이 있고, 주나라 때는 임금님 다음으로 높은 신분의 사람의 관을 만드는 데도 측백나무를 썼대. 귀하게 여겨졌던 '전설의 나무'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흔한 나무가 되다니! 혹시 지나다가 손바닥을 펼친 듯, 타원형으로 쭉쭉 뻗은 측백나무를 보거든 한번 인사를 건네주렴. 네 덕분에 올 겨울이, 이곳의 경계가 제법 멋졌었다고 말이야. 그리고 늘 푸른 나무들이 의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잊지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