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 Evergreen spindle tree
꽃말: 변함없다
꽃: 6~7월
열매: 10~12월
2월이 끝나가고 있어. 3월이 되어도 아직 쌀쌀할 텐데 벌써부터 얇고 화사한 봄 옷을 입고 꽃구경 다니는 생각이 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알록달록 예쁘게 피어있는 꽃을 보고 간식도 까먹고! 생각만 해도 나는 설레는 마음에 배꼽이 간질거리는 것 같아. 아주 예전에 있었던 일이야. 그때가 아마 3월 초였을 거야. 내가 아직 대학 신입생일 때였지. 그날 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하다 창 밖을 바라봤어. 창 밖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따뜻했어. 하늘은 또 어찌나 맑던지. 맑으면서도 따뜻해 보이는 느낌에 반팔을 꺼내 입고 얇은 겉옷 하나만 걸치고 집을 나섰지. 왠걸! 사실 바깥은 아직 겨울 날씨였어. 그날로 나는 바로 감기에 걸려 버렸어. 나는 2월 말에 느껴지는 따사로운 햇살을 볼 때마다 그날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2월은 아직 겨울이라 바람은 차지만 햇살만큼은 참 따뜻하거든.
1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은 언제일까? 맞아, 동지야. 동지는 24절기의 스물두번째 날이지. 24절기는 태양이 움직이는 모습을 기준으로 정해진 날들이어서 음력이 아니고 양력으로 정해.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는 12월 22일이나 23일 즈음이지. 12월 말이 되면 5시만 넘어도 바깥이 깜깜해. 지금은 2월 말이니까 두 달 정도 지났지? 요새는 저녁 해가 길어졌어. 6시가 되어도 밖에 나갈만 하거든. 해가 지는 시각이 늦어지면서 점점 저녁 늦게까지 밖에서 놀고 싶은 날들이 오는 거지. 낮이 길어진다는 건 온 세상이 해를 길게 받는 다는 이야기야. 그럼 그 따뜻한 태양 에너지는 땅에, 식물에 저장된단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 채워지는 날, 온 세상의 식물은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는 거야. 겨울눈 속에 감쳐두었던 잎과 꽃을 피워내는 날이 바로 그날인 거야.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도 우리 주변에 푸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식물들이 있어. 나는 그런 식물 중에 사철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경기도나 서울처럼 약간 북쪽 지방에서 1년 내내 늘푸른 잎사귀를 내고 있는 나무는 소나무처럼 잎이 뾰족한 나무들이 대부분이고 잎이 둥그런 나무로는 사철나무, 회양목 정도가 있을 거야.
사철나무의 영어 이름은 evergreen spindle tree야. 사철나무는 잎이 2장씩 마주나는데 위에도 내려다보면 한 쌍씩 잎이 난 방향이 달라. 꼭 긴 축대에 바퀴살을 달고 있는 모양이랄까. 영어 이름에 들어있는 spindle도 그럴 때 쓰는 '축'이란 뜻이야. 꼭 4장씩 모여 달린 것 같지만 옆에서 보면 2장씩 달렸다는 걸 알 수 있지. 우리 건물 주차장 화단에 사철나무가 자라고 있어. 누구 하나 돌보는 이 없지만 곧게 자라서 푸른 잎을 뽐내고 있더구나. 추운 겨울에 의연하게 초록 잎을 달고 있어 호기심이 일었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가지 끝에 겨울눈이 달려있더구나. 식물은 봄이나 여름에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 내년 봄을 위한 겨울눈을 미리 만들어 둔대. 정말 준비성이 대단하지? 사철나무의 겨울눈 속에는 아마 여린 새 잎이 들어있을 거야. 형광빛으로 반짝이는 여린 잎을 말이야.
사철나무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걸.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정말 흔하게 심겨진 나무거든. 늘 푸른 잎을 달고 있어 보기에도 좋고 오염을 잘 견디고 생명력이 강해서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 특히 울타리를 대신하는 나무로 인기가 좋지. 학교 운동장 울타리, 아파트 단지 울타리, 건물 울타리 어디에서든 어렵지 않게 사철나무를 만날 수 있어. 정말 우리 주면에 사철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동네를 지날 때 한번 찾아보길 바래. 우리가 울타리로 만나는 사철나무는 굵기가 가는 편인데 오래 산 사철나무는 제법 나무다운 모습을 하고 있단다. 사철나무는 3m에서 크게는 6m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해.
남해안이나 제주도에 겨울에 가 본 사람은 알거야. 늘 푸른 둥근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참 많더라구. 이런 나무들을 상록활엽수라고 해. 충청도 남쪽에만 가도 겨울철에 반짝이는 초록 잎을 내민 동백나무가 살지. 경기도나 서울처럼 상대적으로 기온이 더 낮은 지역에서는 겨울에 초록 잎을 보기가 어려워. 넙적한 잎을 가진 나무들은 가을을 지나면 잎을 다 떨구니까. 이런걸 낙엽활엽수라고 해. 가을이 깊어가면 잎을 낙엽으로 모두 떨구니까 앙상하게 마른 가지만 남게 되지. 그 와중에 건물의 경계나 담장에서 사철 내내 푸른 자태를 보여주는 사철나무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럽지.
늘 푸른 모습 덕분에 이름도 사철나무가 되었고, 꽃말도 '한결같다'래.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철 내내 푸른 자태를 보여주는 사철나무! 초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겨울에도 사철나무가 있어 우리는 초록을 잊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이니까.
늘 가까운 곳에서 초록을 보여줘서 고마워, 사철나무야.
네 덕분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초록으로 덮일 날을 기다리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