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리 주변에 사는 식물 이야기 <가로수를 좋아하세요?> 연재를 시작합니다.
안녕, 얘들아. 반가워.
다시 봄이 왔구나. 새학기기 시작되었고 말이야. 오늘은 첫날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해. 내가 좋아하는 건 바로 나무야. 화분에 담긴 것 말고 진짜 산과 들에 있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들 말이야.
너희들은 혹시 나무를 좋아하니? 나는 나무를 좋아해. 보는 것도 좋아하고 만지는 것도 좋아하지. 처음엔 몰랐어. 내가 나무를 좋아한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아주 마음이 답답한 날 있잖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던 날, 뭐가 문제인지 알지만 그걸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아 머리가 지끈 거리던 날, 가슴께가 꽉 막힌 것처럼 갑갑한 날. 나는 산에 가고는 했던 것 같아. 산에 가기 어렵다면 동네 공원이라도 돌아다녔지. 걷기를 하면 물론 기분 전환이 되는 건 확실해. 그런데 그냥 건물들, 아스팔트 도로만 가득한 길거리를 걷는 건 싫더라고. 그게 나무때문이라는 건 한참 뒤에 알게 되었지.
자주 그런 상상을 했었어. 시멘트 건물, 전봇대, 전봇대에 걸린 전선들, 자동차들, 회색빛의 도로들이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풀과 나무만 가득한 풍경을 말이야. 가끔 외국 드라마를 보면 그런 장면들이 있어. 인공의 것들은 보이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풍경이 풀과 나무와 하늘로 가득찬 장면들! 내 주변에는 그런 장소가 보이지 않으니까 마음 속으로 계속 상상했던 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지.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올라.
어떤 나무는 나보다 나이가 적어. 하지만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아간단다. 굵은 줄기에 손을 갖다 대어보곤 해. 나무가 오랜 세월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시간들, 그 시간 동안 굳건하게 참고 견디며 살아온 시간들을 느끼고 싶어서 말이야. 이 순간도 나무의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찰라일 뿐일 테니까. 그런 기분으로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해.
내가 한 권의 책을 쓰게 된다면 그래서 그건 나무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어. 나무 덕분에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 나무로 인해 좀 덜 외로웠던 날들. 그런 것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 그러다가 내가 늘 상 길거리에서 만나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울창한 숲이나 공원, 산에 꼭 가야하는 것은 아니거든. 숲해설을 듣거나 나무도감을 펼쳐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야. 나무는 늘 우리 주변에 있었어. 매일 지나는 거리를 떠올려 봐. 거기에서 너의 걸음을 지켜보고 지켜주던 나무들이 있을 거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잘 받지 못하는 가로수들, 가로수라고 정식으로 명명되지 못하고 구석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나무들. 이 책은 그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만난 이야기야.
나무는 말이 없지. 내가 나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다 듣지 못한 이야기는 네가 이어서 들어주었으면 해.
나무는 늘 너와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