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
옆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큰 울림으로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수련인을 떠올린다. 어느 절에서 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을 떠올린다. 몸을 단련하기 위해 힘든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는 무도인을 떠올린다.
수행(修行)이라고 하면 그런 이미지다.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할 정도로 힘든, 그렇지만 도를 습득해 나가는 것 같은 평온함. 이런 거창한 것을 나는 추운 겨울 따뜻한 히터가 돌아가고 아늑한 노란색 조명이 은은하게 켜져 있는 필라테스 센터에서 느낀다.
누군가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공식적으로 그런 자리가 마련될 때는 강의안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제일 싫어하고 지겨워하는 일이 바로 강의안을 짜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을 쓰기 위해서 목차를 써두고 그에 맞게 하나씩 써 내려가는 일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책이 나오면 누구보다도 기뻐하지만 그 지루한 과정은 아직도 즐기지 못한다. 강의안을 짜는 일도, 책을 쓰는 일도 모두 지루한 과정이다. 그런 내 삶에 또 하나의 지루한 과정이 포함됐다. 바로 필라테스 운동이 그것이다.
누가 보면 매일 몇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실제로 센터에서 운동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50분 밖에 되지 않는다. 1시간도 되지 않는 그 시간이지만, 나는 왜 여기서 수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걸까.
귀는 강사님의 말에 집중하고, 눈은 내 몸과 동작을 바라본다. 머릿속에는 딴생각이 자리할 수 없는 시간이다. 잡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귀와 눈은 닫힌다. 잘못하다간 넘어질 수도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오롯이 그 시간 동안 내 몸과 호흡에 집중하며 어려운 동작을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시간에 이렇게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운동을, 이틀에 한 번은 꼭 하고 있고, 힘들어하면서, 지방이 가득한 배를 보면서 나는 왜 이러고 있지??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강의안을 짜고 나면 강의를 즐겁게 할 수 있고, 책 쓰는 시간이 지나면 완성된 책이 나오는데, 수행 같은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해 줄까. 가끔 사 먹는 아이스 라떼일까, 비 오듯 땀을 쏟은 후 얻는 깨끗한 피부인가, 오늘 운동이 집중된 부위의 근육통인가.
묵언 수행하는 스님처럼 센터에 들어갈 때 한 번, 나올 때 한 번 인사 말곤 말을 하지 않는다. 자율 수강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낯이 익었지만 한 번도 말은 나눠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일행과 함께 오지 않는 이상 센터에서 말하지 않는다. 조용하게 운동하고 조용하게 퇴장한다. 옆에서 자꾸 말 시키거나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참 좋다. 혼자 있을 땐 내향인이라 조용히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그렇게 말없이 힘든 운동 시간을 보내다 보니 '수행'이라는 단어까지 연결됐다. 고작 이 정도의 운동을 해놓고 '수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다니, 어쩜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싶다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10개월 다녔던 수영 이후로 가장 오래 다니고 있는 운동이라 또 나만의 의미부여를 해본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도 수영은 그냥 스포츠가 아니라 재활 개념의 운동이었다. 무릎을 다쳐 6학년때까지 약 2년간 체육을 거의 못했었다. 그때도 잘하지 못하는 수영을 꾸역꾸역 다녔었는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몸을 살리자고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다. 뭔가 모를 평행이론. 그래 수행 같은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건강해지는 내 몸이 나를 기쁘게 하겠구나. 그냥 있기만 해도 빠진다는 근력이 유지될 수 있는 그런, 생명 유지용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