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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Oct 22. 2023

햇빛이 들지 않는 집

하얀색 린넨 커튼 사이로 해가 드는 시간. 오후 2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따가운 햇살 한 줌에 절로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종일 해가 들지 않아 여름에도 서늘한 집. 해가 기우는 시간 거실 창으로 스치는 찰나의 따스함을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는다. 커튼이 하늘거리는 영상에 음악까지 담으면 금상첨화.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다. 훗날 이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날의 분위기와 내 마음이 고스란히 떠오를 걸 알기 때문에.

유독 겨울이 긴 동네, 북향집에 살면서도 만족스러운 이유는 내가 이 집의 가장 따스한 순간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가장 좋은 순간을 마음에 담고 사는 일. 예민한 내가 털털하게 사는 비결이라면 비결일까.     


부유한 부모 아래서 결핍 없이 자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해맑음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되면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야지.’ 알게 모르게 내 부모와 비교하면서 그런 다짐을 하고 또 했더랬다. 그래서 그런 엄마로 살고 있나 물으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형편도 아니거니와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도 한다. 욕구는 끝도 없고 만족은 더더욱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어제도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운동화, 슬리퍼, 축구화까지 있는데 왜 신발이 더 필요하냐고 물으니 구두를 갖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산속에 살아서 구두가 금세 상할 거라고 하니 아이는 대번에 자신의 돈으로 사겠다며 소리를 빽 지른다.      

“좋아. 네 돈으로 사겠다면 말리지 않을게. 다음 주에 가자.”     

구두는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사지 않았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네 돈으로 사라는 허락에 아이는 엄마가 사주는 것과 자신이 사는 것의 차이를 인지한다. 스스로 돈을 모아본 아이일수록 그 차이를 더 빨리 알아챈다. ‘구두를 사면 더 좋은 걸 못 사는 거 아닌가?’ 구두의 필요성을 떠올리게 된다. 둘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의 욕구는 사라진다. 뭘 사고 싶어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기도 하고, 지금 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마음도 금세 없어진다. 아이만 그럴까. 지금 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물건도 지나고 보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장바구니에 넣어둔 물건도 다음 날 보면 필요 없는 물건이 대부분이다.      


만약 구두가 아니라 매일 신어야 하는 운동화였다면 어떨까. 운동화가 해졌거나 찢어져서 불편했다면 아이는 운동화를 사러 갈 시간 동안 ‘필요성’과 ‘간절함’이 커진다. 바로 살 때보다 좀 더 그 물건을 소중히 다루게 된다.     


내 부모님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난 결핍 없는 명랑함보다 결핍 속의 감사함을 먼저 알았다. 그 배움은 살면서 나에게 아주 유용한 무기가 되었다. 주어진 것에 쉽게 감사하는 마음은 내가 오랫동안 결핍을 경험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내 아이에게 욕구 지연을 경험하게 하는 이유다.      


집에 드는 해를 인지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아마 나처럼 서향이나 북향집에 오래 머문 사람일 테다. 항상 존재하는 것에 우리는 감사하기 어렵다. 어쩌다 마주치는 것, 손쉽게 가질 수 없는 것, 간절히 바라던 것에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한다. 결국 결핍과 맞닿아 있는 감정은 감사다. 다이아몬드를 가져도 감사하지 못하는 삶보다 작은 큐빅 핀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삶이 더 행복하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결핍을 수용한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내가 가진 것에서 충분한 감사를 찾는 일이 사실 더 어렵다. 그 귀한 비밀이 보일 때마다 차곡차곡 햇빛 주머니에 채워 넣는다. 또 추운 겨울이 오면, 하나씩 꺼내봐야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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