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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Oct 22. 2023

자유에 대하여

취업준비생이었던 시절, 어떻게든 집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다. 부모님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일부러 지방 기업에 취업지원을 하기도 했다. 면접을 보러 가면 늘 갸우뚱한 표정으로 물어보신다. “연고가 있나요? 어디에서 살 예정인가요?” 있지도 않은 친척을 만들어내며 문제가 없음을 어필했지만 번번이 불합격을 했다. 결국 집에서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회사에 취직되었다.

지방 취업 실패 후 나의 유일한 독립은 결혼뿐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로부터 뚝 떨어져 나가 내 가정을 만드는 일. 당시는 몰랐다. 자살골인줄. 결혼과 동시에 임신, 그 뒤로 줄줄이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독립’이라는 단어 자체를 잊어버렸다.    

 

‘나는 언제쯤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한동안 내 모든 생각은 “자유”로 수렴했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기 시작할 때도 50억 정도 있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싶어 경제공부를 열심히 했고,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 학습’을 가르쳐 보겠다고 혹독한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여행에 큰 취미도 없으면서 10년 뒤에는 혼자 배낭여행을 가고야 말겠다며 남편에게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돈으로부터, 아이로부터, 내가 책임져야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뚝 떨어져서 홀로 남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누리며 사는 매일을 꿈꿨다.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안정을 이뤘고, 아이들은 예전만큼 내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편은 도움을 요청하면 얼마든지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그토록 꿈꾸던 자유가 코앞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맘대로’ 살지 않는다. 그러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그토록 꿈꾸던 내일이 아님을 안다.     


막내가 네 살 무렵, 갑작스럽게 제주 여행을 가게 됐다. 마침 싼 가격에 숙소가 나왔고, 비행기 표가 싼 평일에 남편이 연차를 낼 수 있었다. 거창한 계획도, 렌터카도 없이 대충 짐을 싸서 일단 떠났다. 여름과 가을 사이, 생각보다 따뜻한 제주 날씨에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반팔 티셔츠를 사서 입고 무작정 숙소 앞에서 시작하는 올레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다가 나오면 주저 아 돌을 쌓고, 귤나무가 나오면 귤 향이 좋아 코를 킁킁거리기도 하고, 놀며 쉬며 세 아이와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배가 고플 즈음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성게 미역국 한 사발을 꿀꺽 먹으니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제주 시장에서 슬러시 한 잔을 마시고 귤 한 봉지를 사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눈물이 주룩 흘렀다.     


‘나는 자유롭다.’     

언제쯤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홀로 존재할 수 있을까. 자유는 아주 먼 훗날, 아이들이 내 곁을 다 떠나고 혼자가 됐을 때 비로소 얻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자유는 빠르게 나를 찾아왔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버렸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자유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유 하고자 할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내 삶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세 아이는 여전히 어리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자유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자유로워졌다. 더 좋은 것, 멋진 것, 훌륭한 것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안전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결론에 닿았다.     



인생의 가치가 최저로 하락한 노년기에 확실치 않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돈벌이로 소진하는 사람을 보면, 훗날 고국에 돌아와 시인의 삶을 살겠다며 인도로 돈을 벌러 떠났던 어느 영국인이 생각난다. 그는 인도로 가는 대신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부터 썼어야 했다.



월든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잠깐이지만 ‘자유로움’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 언젠가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 매 순간 괴로워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악물고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 매일 무엇을 포기하고 있다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소로우처럼 돈 벌기를 포기하고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쓸 용기는 없지만 언제든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찰나의 자유가 주는 충만함, 언제든 내 의지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 자유는 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에 의해 자유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자유는 점점 멀어질 뿐이다. 잊지 말자. 자유는 자유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 함께 ‘건강’ 그리고 ‘안전’이라는 어려운 조건이 충족될 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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