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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Oct 22. 2023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일

먹고사는 것은 생존과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부분이고 우리가 일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먹고 살만큼'만' 일한다고 하면 대번에 손가락질받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내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먹고 살만큼만 일하려면 둘 중의 하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미 넉넉한 부를 이뤄서 미래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거나,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삶을 살 수 있거나. 나의 경우 두 가지 이유를 모두 포함한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는 어느 정도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 아닌 철저히 우리 가족의 기준에서다. 공무원 남편의 벌이는 다섯 식구가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크게 마이너스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다. 내가 당장 생활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물질에 욕심이 많은 남자와 살았다면 나는 진즉에 돈을 벌러 나서야만 했지만 감사하게 우리 부부는 먹고 살만큼만 일하며 사는 삶에 동의를 했다. 그래도 나란 여자 적어도 양심은 있어서 적게 쓰는 삶을 선택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지는 않는다. 적게 쓰고 살아도 괜찮은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나는 꽤 많은 일을 하지만 하나같이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책을 쓰는 일도 그렇다. 두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유의미하다고 느낀 돈은 계약금뿐이다. 내 책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확률은 매우 낮다. 얼마 전 방문한 손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책은 시골에 사시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하면 엄청 팔릴 것 같은데요?” 그만큼 확률 없는 일이라는 반증이다. 팔리지도 않는 책을 왜 자꾸 쓰려고 하냐고 하면 그럼에도 나는 쓰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야겠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경험하고 실천한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은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잘 팔리는 책은 못써도 꾸준히 인세를 받는 삶을 살고 싶다. 나를 갉아먹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남에게도 서로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건 축복이지 않나.     


가장 최근에 한 돈 안 되는 짓은 산속에 "책방"을 여는 일이었다. 책방이야말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 혹은 직업은 아니다. 책을 팔아봐야 마진은 얼마 남지 않는다. 잘 파는 책방이 되기 위해서는 카페와의 겸업은 물론 공간 대여부터 각종 모임까지 주최해야 한다. 개인적인 벌이(강의, 번역 등)까지 있어야 겨우 월세를 메울 수 있는 게 요즘 책방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책방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먹고살기 위한 일이 아닌 삶의 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일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업'을 찾고 싶었다.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은 이런 거야.'라는 발악이었는지도 모른다. 먹고살기 위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괴로운 일에 쏟고 싶지 않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가족, 건강, 관계 등)을 포기하면서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벌이도 시원찮은 프리랜서의 삶이지만 내 영혼의 건강함을 지키면서 내 마음이 원하는 만큼 일하고 싶다는 배부른 욕망만큼은 가득 채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수없이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도 겪으며 알았다. 낯선 사람을 만나고, 장거리를 움직이고, 평가받는 일 같은 것을 꽤나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책을 내고 각종 강의 제안이 왔다. 내향적인 사람이라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책을 홍보하는 것도,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 감수했다. 이 또한 책 내고 잠깐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강의를 홍보하고 모객 하는 일에 대한 부담,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국 모객에 실패해 강의가 폐강될 때는 '나는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외침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존감마저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스트레스조차 감사로 여기려고 생각을 바꿨다. 언제든 내가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만둘 수 있고,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최소한 다른 선택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져야 성공이라는 기조에서, 나는 그저 이상뿐인 베짱이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누군가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쌓아가는 사람으로 사는 것, 내가 만족할 만큼 내가 충분한 만큼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만큼 나의 영역을 넓히는 일에 만족한다. 딱 먹고 살만큼,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     


많이 벌고 많이 가져서 행복한 삶도 있지만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도 만족스러운 삶도 있음을, 그런 선택지도 분명 있음을 알고 있다. 겨울을 대비해 성실한 개미처럼 살기보다 지금 현재의 아름다운 것들을 모으는 프레드릭처럼. 그렇게 조금씩 모은 행복으로 추운 겨울도 잘 이겨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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