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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날 작가 Oct 22. 2023

오늘도 실패를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별자리 운세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계속해서, 여러 가지 좋은 것이 손에 들어오는 하루. 노력의 성과, 정당한 보수.]

괜한 설렘에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다시 별자리 운세를 확인한다. 과학적인 증거가 전혀 없는 누군가의 한 줄에 기대어 잠시 달콤한 상상을 하는 일. 요즘 나의 일과다.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던 날부터 마음 한 구석에 걱정과 두려움이 번갈아 다녀갔다. 잘 해내고 싶고, 완벽하고 싶은 욕심이 가끔씩 나를 퉁 치고 갔다. 어떤 날은 밤을 새우고, 어떤 날은 죽은 듯 잠만 잤다. 하루는 잘 될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몇 달간 애간장을 태우던 일의 결과가 나오던 날이었다. 휴대폰 액정 화면이 반짝. [귀하는... 선정되지 않았음을 안내드립니다.]     

매일이 실패의 반복이었다. 나름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30년 동안 하지 않은 실패를 몰아서 하듯 번번이 걸려 넘어졌다. 능력이 부족해서, 관계를 살피지 못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서. 실패의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곤두박질치며 이어지는 생활에 같이 사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하는 눈빛을 종종 보내왔다.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실패의 빈도만큼 마음이 한껏 쪼그라들었던 어느 날 무겁게 가방에 넣었던 노트북, 책 몇 권, 노트, 필통을 다 내려두고 가벼운 크로스백 하나만 메고 밖을 나섰다. 목적지 없이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만화카페에 들어섰다. 라면 하나를 시키고 만화책 몇 권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꾸벅꾸벅 몇 분 즈음 졸았을까. 문득 20대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한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노량진 거리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친구 집으로 주소도 옮기며 여러 번 시험을 쳤지만 매번 1, 2점 차로 떨어졌다. 부모님에게도 면목이 없고,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혼자 안으로 침잠하던 시기. 한 번 발을 들이기 시작한 만화방은 끊을 수 없는 도피처가 되었다. 울고 싶은 날마다 담배 냄새 자욱한 지하 만화방에 몸을 웅크렸다. 그때 나에겐 세상이 겨울이었다. 다들 봄볕에 화사하게 피고 있는데 나 혼자만 온몸으로 혹한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억울했고 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말고 아무렇게나 사는 건데. 지금이라도 그래볼까? 매일이 후회였다. 주변에도 내 안에도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나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그때와 다를 바 없이 나의 현재를 누군가로부터 평가받고 있다. 손톱만큼의 기대를 하게 했다가 가차 없이 차이는 과정을 몇 번째 겪고 있다. 주변 사람에게 면목 없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주머니까지 가벼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실패가 내 인생 전체를 흔들 만큼 큰 사건이었고, 낙오자라고 자기 비하를 했다면 지금은 아니다. 이 실패가 나의 아이디어, 내가 쓴 문서, 나의 설득력이 통하지 않아서 일어난 결과일 뿐, 실패의 주체는 ‘나’가 아님을 안다. 객관식의 세상이 아니라 주관식의 세상, 정답이 있는 시험지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삶의 문제 앞에서 그들은 내가 낸 답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을 뿐임을 안다.     

“괜찮아요? 혹시 마음이 힘들까 봐 전화했어요.” 안부를 묻는 친구의 전화를 회피하지 않는다. 라면을 호로록 거리며 만화책을 보고, 뜨끈한 곳에 몸을 담그고는 꼬마와 한 나절 이불 위를 뒹군다. 남편의 퇴근길을 마중 나가 두런두런 수다를 떨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갓 지은 밥을 먹는다.      

“프레드릭, 너는 왜 일을 안 해?”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지금 햇빛을 모으는 중이야.”라고 대답한 프레드릭을 떠올린다.     

 

나의 계절은 한동안 겨울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의 시작일지 끝일지. 이 시간이 얼마나 더디 갈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시 그동안 잘 모아둔 햇빛을 하나씩 꺼내어 쓰며 이 긴 겨울을 건너가 보려고 한다. 나의 작고 소중한 행복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다 보면 소리도 없이 봄이 와있음을 알게 될 테니까.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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