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빠의 애인이 생기면서부터 가족이 함께 보내는 주말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조금씩 쌓였던 서운함이 결국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그날은 아빠가 나갈 준비를 할 때부터 그 모습이 미웠다. 온 신경이 곤두선채로 내 방에 웅크리고 있었다. '드르륵-'하고 현관 중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또 우리를 남겨두고 가는 거구나. 이런 크리스마스까지.'
결국 아빠의 뒷모습에다 대고 냅다 한마디를 질러버렸다.
"오늘 같은 날은 우리랑 같이 있지! 아빠는 애인이 그렇게 중요해?"
"..."
"..."
"철썩!"
그 순간 아빠의 손이 나의 얼굴로 날아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안이 벙벙하고 서러워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물리적 아픔도 컸지만, 아빠에게 맞았다는 정신적 충격이 더 쓰렸다.
아빠도 많이 속상했을 걸 안다. 우리를 두고 간다는 미안한 마음이 정곡을 찔린 순간 그 당황스러움을 참지 못해 나온 행동이지 않았을까. 또 평소에는 잘도 이해해주던 딸이 갑자기 예상외의 행동을 하니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쓰라린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생기긴 했지만, 아빠가 애인을 만나는 것에 나의 태도나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지지했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분의 만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서로의 자녀들까지 함께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같이 식사를 했고, 서로의 집을 방문했고,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금방 가족이 될 것도 같았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아이가 셋, 식구가 다섯으로 불어나는 것이 현실적인 장애물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줄여서 말하면 나와 남동생 때문이었다. 아빠의 책임감이 결국 본인의 행복보다 우리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