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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언니 Nov 15. 2019

몰래 만나는 엄마

두고 간 것에 대한 판단은 사치였다




    “따르릉- 따르릉-”

    어느 평일 오후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라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그 순간 울었는지 웃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아마 살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겠지. 선명한 사실은 그날 이후로 나와 동생이 엄마와 몰래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 가슴이 쿵덕쿵덕 뛰고 긴장감이 하늘을 찔렀다. 버스 정류장 근처 영국제과에서 다시 재회를 했다. 가끔 찾던 장소의 익숙한 빵과 우유 그리고 엄마. 마치 그동안 아무 일 없었던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엄마를 만난 순간만큼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까지 좋을 순 없었다. 들키면 어쩌지’하는 불안감과 함께 아빠와 할머니를 속였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겠지’하는 기대감은 이내 집 앞 현관에서 초인종 누르기가 망설여지는 미안함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동네 공중전화로 간간이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엄마는 늘 아빠 몰래 시내에서 만나자고 했다. 우리 집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이었으니까.


    자주 보고 싶었지만,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남매 둘이서 시내로 나갈 기회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당시 엄마의 사정이 녹록지 않을 거라는 짐작도 한몫했다. 손꼽아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목소리라도 듣는 것에 만족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때는 마냥 엄마가 필요했으며 보고 싶은 시기였다. 엄마가 우리를 두고 간 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치였다.






   누군가는 아빠에게 사실을 알려 엄마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지 않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 또한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길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떠났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 사실이 아빠를 명백한 피해자로 만들지는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 비춰진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가해자였으며 동시에 피해자였다.


   한 번은 아빠와 엄마가 서로 연락이 닿아 잠시 재결합 이야기가 오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땐 나이가 좀 들었을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설레었었는지... 아빠와 엄마가 재결합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앞으로 세상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솟구쳤다.


    그러나 하늘도 야속하시지... 끝끝내 잘되지는 못했다. 


    그때마저 나와 동생은 우리 때문에 서로를 억지로 참아달라고 떼쓰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지내면서 힘겨워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살면 불행할 것을 아는데... 자식들을 위해서만 희생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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