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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Sep 16. 2020

  열세 살 아들의 49재

잘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되다


나는 매일 울었다. 하루도 울지 않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싶은 날들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내 눈앞에 쓰러져 있었고,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수차례의 심정지 끝에 숨을 거뒀고, 관에 누워 화장을 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납골당에 안치되는 모든 과정을 내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아들이, 건강하던 내 아이가 바로 전날 밤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금쪽같은 내 새끼가 이 세상에, 우리 집에,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절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눈물 없이는 아이를 떠올릴 수 없었다. 내 사랑스러운 아들을 떠올리는데 고통과 슬픔이 꼭 동반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부속품처럼......

 

나는 잘 우는 편이 아니다. 내 나이 열네 살, 엄마 곁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도 나는 그리 슬피 울었던 기억이 없다. 물론 엄마 없이 살았던 십여 년간 엄마를 그리워한 날들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겠지만 헤어지는 순간,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없다는 말이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 대부분 그랬다. 중학교 때 교생 선생님과 헤어질 때 감수성이 풍부했던 여중생들은 하나같이 오열했고 나도 눈시울을 붉히긴 했지만 그건 헤어짐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 분위기가 주는 군중심리나 숙연함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하늘로 떠나보낼 때도 그랬다. 더 이상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없음이 아쉬웠고 남은 유가족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고 눈물도 흘렀지만 그 슬픔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크리스천답게 '아픔 없는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니까 괜찮아,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날 텐데' 하면서 생각보다 빨리 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천국을 믿는 종교인이라 그런 거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슬프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슬픔은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적당히 아파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얕은 슬픔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솜털이 거뭇거뭇해지는 열세 살 아들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것은 결코 그리 얄팍한 슬픔이 아니었다. 벼락을 맞는 것이 이런 것일까? 예고도 없었고, 상상도 못 했고 당연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는 표현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매일 아이를 잃은 충격은 새롭게 갱신되었다.

 

오는 9월 14일은 열세 살 내 아들의 49재이다. 아들의 49재라니!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므로 49재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49재쯤에는 괜찮아지고 싶었다. 적어도 눈물을 거두고 담담하게 내 아들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그래서 심리 상담사를 만났고, 나처럼 자식을 잃은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비슷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빨리 괜찮아지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눈물을 삭히는 노하우, 슬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법, 자식 애도법 101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애초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방식과 표현으로 말했지만 궁극적으로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이제 다시는 아이와 함께 했던 날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살아서는 내 아들을 다시 볼 수 없다. 아이가 떠난 후 내게는 과거만 남았고 그 아이와의 현재와 미래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은 아이는 절대로 내게 올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갈 수 있다. 아이에게 가기 위해 나는 살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잘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아이가 있는 같은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들의 죽음은 가슴 찢어지는 고통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지만 내가 남은 생을 제대로 잘 살아야만 하는 명목과 목적만큼은 확실하게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내 아들의 49재쯤 알게 된 아들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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