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되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뚜벅이입니다."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나만의 길을 걸어가 보겠다.’라는 뜻을 담은 저의 첫 필명은 ‘뚜벅이’였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계정이지만 당시에는 제가 쓴 글을 어딘가에 공개했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제 글을 봐주는 분도 없었고 ‘공개된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 글을 올리는 것에 의의를 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맞다고 말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두 달이 넘어가자, 팔로워 수가 백 명, 이백 명, 삼백 명 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천 명’이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실 팔로워 수와 상관없이(팔로워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도 못 했었고요) 지금껏 써온 글을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자가 출판을 할 수 있는 사이트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부크크’라는 독립 출판 가능한 사이트를 찾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크크에서는 작가가 직접 표지와 내지 디자인을 해서 파일로 올리면 누구나 책을 판매할 수 있도록 사이트에 등록해 주고 있었습니다. 부크크의 판매 시스템은 작가가 책의 재고를 걱정할 필요 없이 독자분이 책을 구매하면 다시 말해서 입금이 들어오면 제작이 진행되는 ‘POD 방식’으로 책을 제작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 사이트를 알게 될 즈음 저는 마침 첫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심한 상태였고, 퇴사 이후 아르바이트할 곳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부크크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편집 가이드에 맞춰서 제 글 편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표지 제작은 지인에게 돈을 지불해서 디자인 외주를 맡겼고, 내지의 디자인 및 전체 편집은 제가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편집이라는 걸 해야 하는 거였어?"
태어나 책이라는 걸 만들어본 적 없는 저는 머지않아 책을 만들려면 '편집'을 해야 한다는 상식조차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식하게도 인터넷에 '책 편집하는 법' 이런 단순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한 땀 한 땀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 편집자분들처럼 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심지어 저는 지독한 컴맹이라, 그저 우직하게 워드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원고를 편집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절실히 느꼈죠. “아, 이래서 편집자라는 직업이 있는 거구나.” 하고요. 그만큼 책을 만드는 매 순간이 저의 한계를 느끼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만큼요. 저는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편집자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정 쓰레기통에 넣을 만큼 엉망인 글을 출간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환골탈태해 주시는 분들이거든요. 차라리 처음부터 새로 만들고 말지, 말도 안 되는 초고를 예쁘게 포장해 주신다는 건 진짜 대단한 일인 거예요. 당연히 저는 모든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와 이걸 팔았다고?” 싶을 정도로 몹시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책입니다만, 정말 운이 좋게도 부크크 사이트에서 그 책이 당시 주간 1위, 일간 1위, 월간 1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저를 있게 할 줄은 그땐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뚜벅이가 걸어왔다, 말을? 제목 재밌네.”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책의 제목이 판매율을 높이는 데 9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제목이었는데, 출판의 출자도 모르는 저마저도 표지 디자인만큼이나 제목은 책의 얼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독자분들이 생겨난 만큼 제목에 ‘뚜벅이’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던 저는 고민 끝에,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주는 듯한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과 ‘뚜벅이’라는 것이 ‘걸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합쳐서 <어느 날 뚜벅이가 걸어왔다, 말을>이라는 중의적인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제목 덕분에, 사람들은 부크크 사이트에서 호기심에 제 책을 클릭해 보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글’을 통한 ‘소통의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얻게 된 최초의 독자분들에게 제가 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고, 조금씩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하면서부터는 팔로워 수가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약 N 천 명의 팔로워가 되었을 때, 저는 첫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부크크 사이트에서 얼마나 1위를 유지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쓴 글이 실제 구매로 이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자, 그때부터는 조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또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단순히 책을 팔아야겠다는 상업적인 목표가 아니라, 제 책의 콘셉트와 분위기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독자분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던 끝에, 저는 제가 직접 책갈피와 메시지 카드를 만들어서 책을 구매해 주신 분들에게 보내드리는 이벤트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한 땀 한 땀’ 굿즈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하면 제가 디자이너분들처럼 일러스트나 포토샵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굿즈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지독한 컴맹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파워포인트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제 생의 첫 굿즈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포토샵을 다룰 줄 모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저는 책갈피, 손 편지를 담은 메시지 카드, 유쾌한 멘트를 적은 껌 종이(껌 포함)를 하나의 투명 비닐봉지에 담는 ‘굿즈 세트’를 만들었고, 더욱더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어느 날 뚜벅이가 걸어왔다 말을, 세트’의 줄임말 <어뚜말 세트>라는 이름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굿즈 세트를 만드는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는 한편, “제 책을 구매해 주시는 모든 분에게, 책 구매 인증을 SNS에 올려주시면 저의 손 편지가 들어간 어뚜말 세트를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벤트 공지를 올릴 때만 해도 파워포인트로 만든 볼품없는 굿즈를 누가 가지고 싶어 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의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어뚜말 세트>를 받고 싶어서 책을 구매하시겠다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굿즈 자체가 갖고 싶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았다기보다는, ‘손 편지’를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메시지 카드가 일종의 작가와 독자를 연결해 주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한 셈인 거였죠. 실제로 어뚜말 세트를 N백 분에게 보내드리면서, 저는 더 많은 독자분과 소통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책이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라디오에도 소개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11월 3일, MBC FM4U 김현철 님의 라디오, <오후의 발견>의 오프닝 멘트에 저의 책 수록곡 <이해, 서운함의 영역>이 소개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근길에 라디오를 듣던 저의 독자분이 당시 인스타그램 디렉트 메시지로 이 소식을 들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보다 더 기뻐해 주시는 독자분의 메시지를 보면서 저는 처음으로, “글을 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두 번은 없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계속해서 어뚜말 세트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저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투잡으로 일을 진행했어요. 퇴근 후 독자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뚜말 세트를 받으실 주소와 연락처를 받고, 새벽까지 편지를 써서 어뚜말 세트를 포장하고, 이튿날 출근길에 우체국에 들러 어뚜말 세트를 발송하기를 반복했죠. 그리고 어느 날, 모 출판사에서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게 되었어요. 그 메시지 한 통을 시작으로, 저의 두 번째 에세이인 <외로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