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면?
"내 마음이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앞서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알아야 보편적으로 공감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끄집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상황에서 한 가지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가독성은 좋으면서도, 깊이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문장은 심플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복잡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글을 쓰려면 내면의 감정들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시를 들면서 함께 이야기해 볼게요.
만약 중요한 프로젝트 며칠 전, 직장 동료가 갑자기 3일 동안 연락이 안 된다고 상상해 볼게요. 벌써 온갖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요.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여기서 잠깐 글 읽기를 멈추시고, 가만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메모장이 있다면 ‘만약 이 상황이라면 내가 느낄 감정’이 무엇인지 직접 적어 보는 것도 좋아요. 그러면 다들, 이 과정을 거치셨다고 가정하고 제가 쓴 메모를 말씀드릴게요. 저는 위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상상했더니, ‘걱정, 분노, 의심, 불안’ 등의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저와 비슷한가요? 아니면 다른 감정이 들었나요?
어떤 감정이 떠올랐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이 ‘왜’ 생겨났냐는 것입니다.
예컨대 ‘걱정’이라는 감정은 ‘혹시 동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분노’는 ‘3일씩이나 연락이 안 된다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서 생겼고요. 그런데 과연 이 두 가지 감정 중 한 가지만 생길까요? 개인적으로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만약 저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두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하니까요.
요약하자면, 걱정이 되지만 화가 나기도 하고 불안하면서도 의심이 들기도 하는 등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이 ‘왜’ 생겨났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다 보면, 감정의 원인을 알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것들이 전부 ‘글감’ 즉, ‘소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위의 감정 중 하나를 선택해서 쓰려고 하지 말고 복잡한 감정들이 모두 들어간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해 보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풍성하고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거든요.
두 번째 예시를 들어 볼게요.
거의 1년 만에 친구들과 술자리가 생겼는데 애인이 친구들을 못 만나게 한다면 나는 어떤 감정일까요? 이번에도 글 읽기를 잠시 멈추고 감정들을 죽 나열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억울할 것 같습니다. 서운하기도 하고, 이러다가 헤어지면 어떡하지? 싶어서 두렵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무기력해질 것 같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가지 상황을 정해놓고 거기에 따른 내 감정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보다 풍성한 글쓰기가 가능해집니다.
마지막 예시입니다.
만약 잃어버린 반려견을 다시 찾았다면 나는 어떤 감정일까요?
이번에도 떠오르는 감정들을 나열해 보세요. 저는 안도감, 미안함, 자책, 기쁨, 불안, 두려움 등을 적어보았는데요. 이런 식으로 한 가지 상황에서도 우리는 한 가지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글쓰기에 접근한다면 보다 공감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직접 실행에 옮겨보셨다는 가정하에,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덤덤하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요?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덤덤하다’는 것을 소재로 한 번 어떤 감정들을 표현해 볼 수 있을지 한 번 적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덤덤하다.’는 문장을 보았을 때 드는 감정들을 나열해도 좋고요, ‘덤덤하다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나만의 정의를 문장으로 써 봐도 좋습니다. 먼저,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검색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특별한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예사롭다.
(2) 말할 자리에서 어떤 말이나 반응이 없이 조용하고 무표정하다.
(3) 음식의 맛이 잘 안 나고 몹시 싱겁다.
이처럼 ‘덤덤하다.’는 말에도 다양한 정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사전을 적극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사전을 많이 검색해 보는 편이에요. 어떤 감정이 떠올랐을 때 그것과 비슷한 다른 단어를 찾아보거나, 혹은 그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는데, 사전적 정의를 찾다 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글감이나 소재를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가가 되고자 하시는 분들은 사전을 가까이에 하시면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여러분들은 어떤 정의를 내리셨을지 궁금한데요. 저는 제 에세이 <외로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에 수록된 글에 ‘덤덤하다.’는 감정을 소재로 쓴 글을 예시로 보여드리는 한편, 해당 글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쓰게 됐는지 함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덤덤한 것은 말 그대로 덤덤한 것이지
괜찮은 것이 아니다.
덤덤하다는 말은
익숙해져 무뎌졌다는 것이고
이건 때로, 괜찮지 않다는 말보다 더
아픈 말이다.
저는 ‘덤덤하다’는 감정을 ‘익숙해져서 무뎌진 감정’으로 정의해 보았습니다.
이는 '덤덤하다'라는 감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실은 어떤 대상을 포기한, 위험한 감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에서 시작됐어요. 그래서 마지막 문장에 ‘괜찮지 않다는 말보다 더 아픈 말.’이라고 재차 정의를 해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외부로부터 어떤 충격을 받을 때, 그것을 소화해 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는 충격을 받자마자 ‘아프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는 충격을 받았을 당시에는 아픈 줄 몰랐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마음이 다쳤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는 것처럼요. 누군가에게는 ‘덤덤하다.’는 것이 정말로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괜찮아진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고요. 저처럼 덤덤한 것은 사실은 ‘괜찮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도 있고요. 어떤 방향이든, 중요한 것은 ‘나만의 정의’를 내려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는 결국 ‘솔직한 나’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쓴다는 것 역시 결국, 평소 누군가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솔직한 감정을 작가가 ‘대신 말해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어떤 현상이나 질문이 떠올랐을 때 그에 대해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연습이 중요하다.’라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그때그때 느끼는 무수히 많은 감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짬짬이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글을 쓸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일단 써보고 퇴고하자!”라는 마음가짐을 장착한 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