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건 분명히 꽃인데,
밀려오는 냄새가 요상하다.
확실하다.
이건 꽃향기가 아닌 발 냄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다.
참 좋다.
딸이 아빠의 신체 중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귀다.
안아주면 한 손으로는 여지없이 귀를 붙잡고
등 뒤에 올라타면 양 귀를 붙잡으며
누워 있을 땐 발을 들어 내 귀를 사정없이 비비적거린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장 공들여 씻는 곳 역시 귀다
내 귀에 혹여나 더러운 물질들이 쌓여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면 평소보다 더 박박 문지른다.
아버지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서 때밀이 수건으로 살이 시뻘게 질 때까지 문질러댔던 어린 시절처럼.
의사 선생님께 진지하게 상담을 했다.
"선생님, 하연이가 제 귀에 너무 집착하는데,
이거 괜찮은 건가요?"
선생님은 그냥 웃으며 넘기셨다.
"그냥 아빠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집착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져요."
선생님 말씀이 미덥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아빠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게 분명하다.
귀를 만져대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딸의 이 이상한 버릇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 귀도 남아나지 않는 거 같다.
아내는 한마디 한다.
"오빠 그거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평생 못 고칠 걸?"
"응. 그래야지. 그래야지......."
아내의 말을 듣는 척했지만
사실 나는 딸이 내 귀를 만져주는 게 참 좋다.
누군가 나를 아무런 허물없이
마음대로 막 대해준다는 게 좋다.
그냥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이상하게 좋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있기에
어디서도 나를 막 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귀를 자주 주무르면 몸에 좋다는 인터넷 기사도 봤다.
귀는 인체의 축소판이며,
우리 몸의 각 기관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고 했다.
당기거나 누르고 주무르며 괴롭혀줄수록
질병이 사라진다는 거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딸만큼은 내 귀를 마음껏 만지도록 놔둔다.
앞으로도 누가 날 그리 하겠냐 싶어서.
거실 소파에 앉아 창문 밖의 벚꽃을 느끼고 있는데
딸의 발이 불쑥 또 들어온다.
마음껏 아빠의 귀를, 코를, 눈을 발로 비벼댄다.
거의 유린하는 수준이다.
분명 벚꽃을 보고 있는데
향긋한 꽃냄새가 아닌 발 냄새가 밀려온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참 좋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누군가 내 귀를 만지며 발 냄새를 풍기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