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역시 TV 볼 때.
하연이가 즐겨보는 영상물이 하나 있는데
특히나 그 마지막 부분,
극 중 캐릭터들이 모두 함께 나와
신나게 노래하며 춤추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뮤지컬로 따지면 커튼콜이라고나 할까.
이 부분이 되면 하연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주인공들의 춤을 똑같이 복사해낸다.
그리고 잠시 뒤 영상이 끝나면,
밀려오는 공허함에 울부짖는다.
매일 비슷한 시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날과 변함없이 그 영상을 신나게 보고 있던 하연이가
마지막 장면이 나오자
갑자기 울먹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딸의 반응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푹 빠져있는 드라마가 끝나는 게 싫어서
끝까지 보는 걸 일부러 아껴둘 때가 있다.
좋아하던 주인공들의 마지막을 보는 것도
아쉬울 뿐만 아니라,
이게 끝나면 무슨 낙으로 살아가나 하는 걱정에
마지막 두세 편이 남게 되면 보는 걸 조금씩 미루게 된다.
이렇게 무엇이든 그 마지막을 보는 게 두려워
그 끝을 의도적으로 늦출 때가 있는데,
육아가 딱 그렇다.
36개월의 하연이.
다들 이때가 가장 예쁠 때라 했다.
그리고 그게 거짓이 아니었다.
딸내미가 제일 예쁜 지금,
크는 게 여기서 딱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매일 드니까.
갓 태어난 딸을 키우느라 한참 고생할 때
육아 선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힘들지만, 곧 크는 게 아까운 순간이 올 거예요.”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그 조언이
내게 현실이 돼 있었다.
또 누군가는 말했다.
‘육아에 끝은 없다.’
아이가 어릴 땐 너무 어려서 고되고,
조금 크면 크니까 힘들고,
학교에 가면 또 학교를 가니 힘들다는 거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끝난 건 줄 알았는데
취직이나 결혼 같은 새로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거다.
이 말이 정말인지 확인하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육아의 시작 단계에 있는 지금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육아의 끝은 없는 게 아니라,
그 끝을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
사람마다 각자 기준은 다르겠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면 언젠가 놓아주어야 하는 순간,
그 끝이 분명히 있을 거고
그게 언제일지 선택하는 것은 철저히 나의 몫이란 거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이제 끝!" 외칠 수도 있고,
취업을 해야 자기 몸 하나 간수할 수 있게 되니
그게 마지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 끝낼 수도 있고
자식을 낳아야 진정한 끝맺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육아의 끝을 선언하는 순간이
언제가 될지 아직 알 순 없지만,
하나는 확실할 것 같다.
끝을 내야 하는 순간은
많이 두렵고 크게 아쉬울 것 같다는 것.
아직 느낄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할 길은 없지만,
그때는 하연이가 아닌 내가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싫어! 싫어! 이제 그만 커! 더 크면 끝난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