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처제가 선물로 사준 드레스를 ‘공주님 옷’이라 부르며
애지중지 아끼는 딸에게 물었다.
"하연이는 공주가 좋아? “
"응! “
"아빠는 공주 싫어. 공주는 약해 보이잖아.
하연이는 여왕! 아니다. 그냥 왕!"
"아니야! 하연이는 공주 할 거야! 할 거라고!"
어르신들께서는 하연이를 볼 때마다
'우리 공주님~'하며 예뻐하신다.
하지만 난 그 말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하는 이미지,
예쁘긴 하지만 뭔가 나약해 보인다.
왠지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거 같다.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니고
누군가 만들어 주길 기다려야 하는 느낌.
물론 '공주'에 나쁜 의미만 들어있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공주’라는 단어가 그렇게 와 닿는다.
물론 겨울왕국에서 엘사와 안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4남 1녀인 아버지 형제들은
넷째인 고모를 환갑이 지난 지금도 ‘공주’라 부르신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어르신들께서 ‘공주’라고 하실 때마다,
예쁘다고 칭찬해 주실 때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프로 불편러처럼 한 마디씩 꼭 덧붙인다.
“공주도 나쁘진 않지만 왕이 더 낫지 않나?”
“하연이는 예쁘기도 하지만 멋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사실 요즘엔 왕도 그리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닌 거 같고
평범한 게 최고인 거 같긴 하지만
어릴 때의 꿈과 포부는 큰 편이 나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딸내미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돼야 할지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딸의 이름을 지을 때도 그랬다.
하연이의 ‘연’ 자에 한자를 붙일 때
嬿(아름다울 연)과 姸(고울 연) 두 자를 후보에 두고
고민했다.
둘 다 ‘아름답다’는 뜻은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두 번째, 세 번째 의미를 더 살펴보았고,
주로 아름다움에 치중한 느낌의 嬿(아름다울 연) 보다
총명하다는 뜻이 숨어있는 姸(고울 연)이 마음에 들어
姸(고울 연)을 선택했다.
아름다움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고
겉모습에만 의지한 사람은 결국 속 빈 강정이 돼버리니까.
잔뜩 삐딱하게 나가봤지만,
딸이 공주 옷을 안 입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하연이 돌잔치 때였다.
옷 대여점에 갔을 때 그냥 한번 입혀봤는데,
그때의 나는 아무 생각 없는 바보 아빠가 돼있었다.
너무나도.
정말이지 너무나도 예뻤으니까.
하루만큼은 그냥 딸의 예쁘고 공주 같은 모습을
그냥 바라보며 좋아했다.
새 시대의 아빠처럼 이러쿵저러쿵 해봐도
딸의 예쁜 모습에 바보처럼 헤헤 거리며 좋아했던
기억은 무지하게 많다.
너무 예쁜데 어떡하라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밥 먹는 배와 디저트 먹는 배는 따로 있다더니
딸아이에게 바라는 모습도
그런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인가!
그런 결에서 보면
결국 나는 그렇게 모진 아빠는 못 될 거 같다.
그래도 ‘공주처럼 예쁜 사람’보다
‘속이 꽉 찬 멋진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주입시킬 거다.
"하연이는 공주 말고, 강한 사람!”
"하연이는 그냥 예쁜 사람 말고 멋있는 사람이 될 거야! “
딸이 이렇게 말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