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차에 타려 하면 하연이는 언제나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나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연이는 아직 4살밖에 안됐잖아.
16년 뒤에 아빠가 운전하게 해 줄게.”
저녁 식탁에서 거품이 쏴아아 올라오는 맥주를 보면
하연이는 항상 말한다.
“아빠. 그거 매워? 나도 마셔볼래.”
그러면 나는 다시,
“이거 엄청 매운 거야~.
16년 뒤에 아빠가 마시게 해 줄게.”
홈쇼핑을 보며 아내에게
지금 세일하는 물건을 사고 싶다고 말하면,
이 녀석은 또 끼어든다.
“하연이가 사줄게!”
그럴 때 나는,
“하연아 아마 그건 16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거 같은데?”
의기소침해진 하연이를 어이없는 꼬드김으로 달래 본다.
“하연아 떡볶이 먹는 건 그렇게 오래 안 걸려.
몇 년만 지나면 먹을 수 있어. 조금만 기다려봐. 알았지?"
얼마나 설레고 기쁘며 흥미진진할까.
혹은 얼마나 애타고 서운하고 속이 상할까.
딸이 처음으로 떡볶이의 매운맛을 알게 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엄마 아빠보다 친구들을 더 좋아하게 되는 걸 받아들이고, 몰래 화장하고 나가는 걸 나무라며,
남자아이들 만나는 걸 훼방 놓는 일이.
그러다 어느덧 다시 시간이 흘러
정신 못 차리며 운전석의 핸들을 잡고 있는 걸
지켜보는 일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요건 조금 빨리 해보고 싶다.
딸아이와 처음 술을 마시는 날,
나도 이렇게 물어보련다.
"술맛이 어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