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어린이집에 가장 먼저 등원해서 제일 늦게 집에 가는
아이가 있었다. 하연이가 1세 반일 때 같은 반이었는데
부모가 우리 같은 맞벌이였기에 지원이는 자연스레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 들어가기 직전, 하원 할 때 보게 되는 지원이는 항상 울고 있었다. 한번 등원하면 까마득한 시간이 지나서야 부모와 다시 만나게 되니 그럴 법도 했다.
주말에 우연히 지원이네와 만난 적이 있었다.
볕 좋은 가을날, 집 근처 공원에서
나란히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함께
먹게 됐는데 그 때야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갑자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출퇴근 시간이 2배로 늘어났다고 했다.
아내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야근이 잦았기에 자연스레 지원이가 어린이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됐다고 했다.
또 그들은 이곳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부부가 됐기에 이 동네를 사랑하고 당연히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던 부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어쩔 수 없죠.”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자연스레 나오는
한숨. 그리고 잠깐의 공백.
서로 아무 말도 없는 그 잠깐의 침묵이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함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 모를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직장인이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매달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아이의 교육비,
가족의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우리 직장인들에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엄마의 야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아빠가 집과 동떨어진 곳이 아닌 희망하는 곳에 근무할 수 있다면, 직장인들의 육아 여건이 조금만 더 나아진다면 지원이의 울음이 조금은 그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p.s>2018년에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가이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추석 때 한국 관광객이 몰리는 걸 보고
한 현지인이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때 왜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나요?”
가이드는 추석은 서양의 땡스기빙 데이 같은 날이고,
가장 긴 연휴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길게는 열흘까지
쉬는 사람들이 많다고 대답해줬다 했다.
직장인들은 연중 가장 길게 휴가를 낼 수 있는 시기라는
설명도 덧붙여줬다고 했다.
그러자 그 현지인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한다.
“오, 다른 건 모르겠고 저는 가장 긴 연휴가 열흘밖에
되지 않는 직장에서는 일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