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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pr 17. 2020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딸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호가 자꾸 수박을 던져.”


“왜 그러는 건데?”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예빈이는 헬로 키티를 자꾸 뺐어가.”


“으잉? 예빈이가 왜?”



“부끄럽잖아....... 그래서.......”






맞다. 그랬다.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으면 일단 괴롭혔다.

괜히 가서 가지고 있는 걸 뺐거나 뒤로 묶은 머리를 잡아당기곤 했다.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 줄을 끊어버리는 남자아이들의 모습은 흔했다.


그게 부끄러워서 그런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걸까.

좋아하는 친구에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하는 행동이라는 걸 36개월의 아이가 꿰뚫어 보고 있다니 놀랍다.


내가 가장 최근에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를 떠올려보니

공들여 써온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를 했을 때였다.  

누군가 내 허접한 글을 읽을 거란 생각을 하니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굳이 왜 글을 써서는 이렇게 부끄러워져야 하는 거냐고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함께 연이어 날아온 것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설렘과 기대감, 흥분 따위의 감정이었다.  

부끄럽지만 설레고, 어색하지만 기대되고, 두근두근하면서 살짝 무섭기도 한 이 느낌.  


그래. 이거였다.

우리는 이 감정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부끄럽다는 감정이 이렇게 소중한 감정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조금 더 많이 느껴볼 걸 그랬다.


나는 점점 더 부끄러운 일이 사라질 거고

딸은 점점 더 부끄러운 일이 많아질 거다.


딸이 다음에 또 부끄럽다는 얘기를 하면

그 감정이 얼마나 귀한 감정인지 설명해줘야겠다.


따스한 봄날에 친구 때문에 부끄러워질 수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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