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았다.
정성을 다해 응수해 준 뒤 놀라워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어떻게 만 세 살도 안된 아이와 이런 대화가 가능하지?"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하연이는 손을 높이 든다.
하연이 손가락은 4개가 펼쳐져있다.
3살, 아니 4살짜리 어린아이에게도
대한민국의 나이 문화는 예외 없이 적용되나 보다.
한 살이라도 더 많아 보이고 싶어 하는 딸.
2020년 새해가 됐을 때, 하연이는 한 살 더 먹는 거니까 이제 4살이라고 알려주었는데
3살이란 말이 나오자 굳이 손가락을 펼쳐 4살로
바로잡아주는 걸 보니 그게 그리 좋았나 보다.
틈만 나면 또 말한다.
“하연이 애기 아니지? 언니지!”
나는 이렇게 대답해준다.
“그럼! 하연이는 언니라 안 울지? 맘마도 잘 먹지? 씩씩하지?”
이제 만 마흔을 돌파를 앞둔 아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누가 올해 몇이나 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마흔 됐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제가 이제 나이가 제법 됩니다. 그러니 무시하지 마십시오'라는 뉘앙스를 담아 전달한다.
나이가 들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도 이미 꼰대가 된 거다.
아마 이런 우리의 특수한 나이 문화는
우리가 한국을 떠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를 떠날 생각이 아직은 없다.
그러면 답은 하나인가 보다.
하연이 보기 부끄럽지 않게 '예쁘게 나이 먹는 것'
어차피 될 거,
아기보다는 언니가,
어린이보다는 어른이 낫다는 걸 보여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