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의 두 번째 만남
SNS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뉴스를 빠르고 쉽게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지역에서 지진이 났는지, 어떤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는지, 어느 지역에서 전쟁을 시작했는지 등등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접하기 어려웠던 정보들이 손가락 제스처 한 번으로 바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을 얻기 위해 SNS 계정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한 번도 만나본적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아 계정이 유지되고 있다. 어떤 사람의 발베니 더블우드 12년 산을 마시는 모습,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연주로 심장이 부서지는 모습, 고양이 집사로써 고양이님의 놀라운 귀여운 모습을 알리는 모습 등. 이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은 행복과 부러움이 넘쳐나고 즐겁기만 하다. 전혀 다른 지역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소우주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밝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며 행성 갯수도 다른 이 소우주들은 각자가 프로그램한 원리에 따라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나의 소우주가 옮다는 확신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입과 손에 쥔 채 끊임없이 확인한다. 내 소중한 소우주는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가고 그것을 확인받기 위해 생각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며 살아가지만 언제나 우주에는 악당과 외계인의 침공이 따르기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이 존재들은 어딘가 익숙하지만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들이라 나의 소우주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자존심을 건드리며 감정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런 존재들이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고 실제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까지 잃어버리게 만든다. 우리가 SNS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바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존재들을 발견했지만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밤에 SNS를 보면서 맥주나 하이볼을 마시는 게 하루 중 나의 가장 큰 해방이었다. 저녁 7시쯤부터 오늘은 무슨 술을 마실지 무슨 안주와 함께 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퇴근 후 식사를 마치고 한두 시간 정도 러닝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빨리 샤워를 하고 술을 마실 생각에 들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오늘 나의 SNS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쭉 살펴보며 즐거워하다가 술이 조금 들어가기 시작하면 여느 때처럼 떠들기 시작한다. 분명 처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 명확했는데 정처 없이 어딘가로 흐르는 이야기는 처음의 주제와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하고 있고 결국 나는 잘하고 있다는 정신승리로 얼버무리기 끝맺음이 아주 할리우드 영화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헛소리만 떠들면 정말 다행인데 가장 최악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동정이나 위로이다. 누군가 힘들다는 글을 읽고 마치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마냥 온 힘을 다해 자판을 누르다 되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저 소우주에 침공한 외계인이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영화 FIVE FEET APART는 같은 병을 앓는 두 남녀가 서로를 좋아하게 되지만, 서로의 박테리아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항상 6피트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로맨스 영화이다. (외모가 훌륭한 배우들의 멋진 연기가 참 인상적이었고 금주를 하는 동안 술을 마시는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아서 맘에 들었다.) 6피트이면 약 2미터인데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주장에 따르면 Social Distance라고 불리는 사회적 거리에 해당된다고 한다.(이게 코로나 시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의 사회적 거리와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화 중에 제삼자가 끼어들었다가 뻘쭘하면 뒷걸음질이 허용되는 거리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나 스킨십이 불가능한 거리이기에 정중한 격식과 예의만 차려도 좋은 평가를 받기 좋은 거리이다. 하지만 연애하고 싶고 위로하고 싶은 두 사람에게 서로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서로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두 사람의 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영화에서 두 배우가 유지해야 하는 이 사회적 거리가 어쩌면 SNS에서는 가장 적절한 거리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상대방의 우주를 침범하지 않는 거리. 하긴 연애도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소우주에는 절대로 침범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어쩌면 사회적 거리는 사회적 합의, 연애적 합의가 된 어느 시점과 거리가 정답 일 것이다.
그럼 금주를 하면서 지금의 나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다.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때로는 거리 유지를 실패하여 우주 침공자가 되기도 하고 침략을 당해 황패화가 되기도 한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도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거나 아직도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는데 힘든 것처럼 술을 끊었다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린다는 크나큰 장점은 나의 우주 방위대를 구축하는데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금주 자조 모임은 참여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나는 이 가이드라인이 참 마음에 든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상대방의 우주를 침범하지 않으며 각자를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크게 작용할 때가 많다. 이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각자가 자신의 소우주를 지키는 철학을 잘 구축하면 좋겠다.
1. 나누기 전에 손을 들어주십시오. 나눔은 5~10분으로 제한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때까지 한 번씩만 나누십시오.
2. 감정을 나누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 힘, 희망을 나누십시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감정은 도덕과는 상관없는 중립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조건 없이 받아들입니다. 수치감을 주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3. 너 우리라는 말은 사용하지 마십시오. 각 사람은 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4. 지금 - 여기에 머무십시오. 오늘 또는 이번 주에 자신이 다루고 있는 것을 나누십시오. 먼 과거의 이야기만 하지 말고 과거의 역사를 현재로 가져오십시오.
5. 끼어드는 말이나 충고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고쳐주기 위해 어떤 제안이나 방법을 제시하지 마십시오. 각자가 당신의 개입 없이 자신의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십시오. 각 멤버는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눈 것에 대해서 토론하지 마십시오. 충고는 절대 금물입니다.
6. 나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질문은 모임이 끝난 후에 해주시기 바랍니다.
7. 자기 차례에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통과" 하시고 차례의 맨 마지막에 나누십시오.
8. 이 자리에 나눈 것은 이 자리에 두고 가십시오. 누가 참석했는지도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