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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티아 Apr 17. 2022

나이 듦에 대하여

망고와 할아버지

우리 모두 다 늙어가고 있네라고 대답하며 웃었던 적이 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우리 부부와 망고의 안부를 물어왔을 때, 신상을 얘기해 주다 보니 나온 말이었다.

주로 몸의 어디가 안 좋아졌고 아프다는 사실을 전달했을 뿐인데, 갑자기 '늙어가고 있음'의 현실이 이마에 와 부딪혀 전화기 너머의 아들에게 어색한 웃음을 날렸었다.


친정 부모님의 연세는 80대 후반과 초반이다. 나는 50대 중반, 남편은 60대 초반, 그리고 우리 망고는 만 12살 하고도 9개월을 살았으니 70대 초반으로 볼 수 있겠다.   이들이 어떤 중병에 걸려 심각한 상태에 놓인 건 아니지만, 조금씩 에너지가 줄어들고, 몸의 불편한 곳이 생겨나고, 병원을 자주 찾게 되고, 먹는 약의 종류, 혹은 양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망고에게 심장병 진단이 내려졌다. 심장의  잡음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리던 것이 규칙적으로 들리기 시작한하여 수의사 샘의 권유로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이첨 판막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피가 조금씩 역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A, B1, B2, C, D 단계 중 B2로 넘어가는  초기 단계라 약은 두 달 후 검진에서 처방받기로 했다. 약을 먹는다고 노화된 판막이 갑자기 제 기능을 하는 건 아니지만, 병이 악화되는 속도를 지연시켜주고, 숨 쉬는 걸 좀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다고 한다.

평소 산책을 많이 하던 망고의 탄탄한 허벅지 근육을 내심 뿌듯해하며 망고는 20살까지 거뜬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심장병이라니!!  초음파 사진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믿지 않았을 거 같다. 그만큼 겉으로 나타나는 병의 전조 증상은 거의 없었고, 단지 잠이 많아진 건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라 여겼는데, 그것이 심장이 힘든  이유였다니!

앞으로 3년 남짓이라는 말을 직접 들었을 때의 서늘한 충격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오늘은 친정아버지와 병원에 다녀왔다. 실은   이 글도  친정에 열하루째 머물며 쓰고 있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편이었고 규칙적인 생활의 표본이셨던 분이, 갑자기 식욕을 잃으시고 아침에 못 일어나시게 되었다. 마침 심혈관내과의 정기검진이 잡혀있어 엄마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겸사겸사 아버지의 상태를 문의한 결과, 의사는 5년 전 오른쪽 목덜미 경동맥이 이미 70% 막혀 있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입원해서 총체적 검사를 받아보길 권유했다. 깜짝 놀랐다. 아버진 알고 계셨었나. 그때 듣고 까먹으셨던 건가. 처방약은 잘 드시고 계시긴 했지만.... 난 얼마나 무심했던 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아버지와 같이 병원에 동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늘 괜찮다고 하시고 워낙 성실히 본인 관리를 잘하시던 분이었기에 우리 모두는 아빠를 믿거라 했지만,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동 식사를 못하셨는데,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들른 우동집에서 맛나게 우동과 국물을 드시던 아버지 모습이  연약해 보였다. 늘 집안의 가장임을 잊지 않으시고 지나치다 싶게 식구들을 챙기던 부담스러운 모습도 그리 오래 볼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친정에 와 머물며 관찰한 결과, 아버지는 친구분들 사이의 카더라 통신을 끌어와 끝끝내  보청기도 거부하신 채, 잘 안 들리고 잘 안 보이는 답답한 현재보다 기억 속에 선명한 본인의 화려했던 과거 시간에 매여 살고 계셨다. 되돌아볼 추억이 많은 행복함일까. 아니면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행함일까.  

점점 과거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의 뇌가 자꾸 그를 어둠의 골짜기로 이끌고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 더 화가 났다.


아버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친구들의 부모님의 부고 소식을 하나둘씩 들을 때도 난 그것이 남의 나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최후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지난한 시간이 될는지 이제 내 나라 이야기가 되어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몸이 아파도 산책 소리에 벌떡 일어나 즐거워하는 망고는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는 현재에 충실한 강아지이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저물어 가는 동안에도 기쁜 순간은 있고,  웃을 수 있는 찬스는 여전히 있을 거라고. 다만 우리는 그 찬스를 잡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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