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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쉬워지지 않는 이유 : 친구 B의 사례

by 육선이 Mar 15. 2025



지난 주에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 A의 고민에 대해 얘기했었다. 

이번 주는 다른 친구 B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난 이야기 : 장례식에서 만난 친구 A의 사연]
https://brunch.co.kr/@sixliner/30


B는 PT를 10년이나 받았는데 아직도 운동을 잘 모르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당장 PT를 안 받으면 뭐부터 해야하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면서, 10년 동안 돈을 엄청 많이 쓴 것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10년이라는 기간과 그동안 쓴 돈의 액수다. 운동이라는 게 일반인이 10년 동안 수천만원을 써도 '기본 시스템'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나? 조금 부족한 친구이긴해도(농담) 스페셜하게 머리가 나쁜 애는 아니고, 원하는 지식 수준도 건강관리 대학원생 레벨이 아니라 평소에 어떤 운동을 해야 건강과 근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 정도인데도? 


전문 학원이라면 어땠을까? 대부분 권위 있는 교과서의 내용을 가르치고, 검증된 커리큘럼으로 학습을 진행할 거다. 강사는 학습의 가이드, 수강생은 학습의 주체로서 역할도 명확히 규정되어 있을 거다. 반면에 피트니스 업계에는 권위 있는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커리큘럼도 제각각이며, 강사와 수강생의 역할도 그때그때 다르다.




이런 문제를 세가지 요소로 나눠서 정리해봤다.


첫째는 '교육'의 부재다. 


운동을 배우는 시간에 '교육'이 빠져 있는 거다. 

퍼스널 트레이닝 현장은 '교육'이 아닌 '일방적 서비스'에 가깝다. '교육'이 가능하려면 배우려는 학습자와 가르치려는 교육자가 공존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왜 / 무엇을 / 어떻게'를 가르치고 이해하는 시간이 아니라 뇌의 전원을 꺼놓고 시키는 것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광경이 드물지 않게 펼쳐진다. 인터넷에서는 '숫자만 세주는 트레이너'를 치어리더라며 조롱하는 밈도 있는데, 이건 오히려 치어리더라는 직종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런 밈은 쓰지 말자..)


교육이 얄팍하고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왜 해야 하는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이렇게 하시면 된다'고 시키기만 한다.


둘째는 '개론'의 부재다. 


총론, 교과서, 큰 그림, 조감도라고 해도 좋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해서 처음 들었던 전공 수업이 '인문지리학개론'이었는데, 그 수업에서는 인문지리학이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어떻게 연구하는지, 무엇을 연구하는지, 언제 시작되었는지, 어디에서 발전했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다뤘다. 특히 '왜/어떻게/무엇을'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피트니스는 그렇지 못 다. 가지만 무성하고 줄기는 앙상한 나무 같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정돈된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결론도 없다. 통일성이나 일관성이 싹틀 토양이 없다. 내가 맞다고 주장하는 가지가 너무 많아서 나무는 무거운데, 줄기가 앙상해서 곧 부러질 것만 같다. 모두가 맛볼 수 있는 달달한 과일이 맺히기는 요원해보인다.


각자의 주장이 난무하는 가시덤불에서 일반인들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다. 다들 전문가라는데 다들 주장이 다르다. 다수가 공유하는 교과서는 없고 각자 쓰는 교재만 있다. 여집합은 흔한데 교집합은 드물다. 도대체 내 한 몸 건강히 돌보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시원하게 알 수가 없다. 


셋째는 '너무 많은 메뉴'다. 


헬스, 보디빌딩, 런닝, 필라테스, 요가, 크로스핏, 복싱, 클라이밍, 테니스, 수영, 케틀벨, 맨몸운동, 등산부터 '스쿼트만 하면 된다', '매일 1만보 걸으면 된다', '물만 1리터씩 마시면 된다'까지 건강과 몸에 대한 온갖 메뉴가 쏟아진다. 적어놓고 보니 일반인이 선택을 못하고 괴로워하는 게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이 메뉴 중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기준'이 있으려면 사실은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이 있어야 양질의 판단을 할 수 있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게 '기준'이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돈된 지식, 합의된 교과서 없이 온갖 메뉴가 자신의 존재감만 뽐내고 있다. 분명히 중요한 내용인데 학교에서 배울 수도 없다. 




피트니스 업계에서는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노터치 불문율이 꽤나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자 자기 센터, 자기 회원만 신경 쓰고 다른 트레이너나 헬스장이 뭘 하는지는 터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서로를 존중하고 트러블을 예방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통의 무언가 없이 각자의 자유를 누리는 상황이 몇십년째 이어지면서 업계 전반이 가지만 무성하고 줄기는 앙상한 나무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특히 이런 문제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오랫동안 악영향을 미치면서, 일반인들이 업계에 느끼는 피로감은 커졌고 신뢰도는 낮아졌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 같은데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좀 우울하게(?) 됐다. 나도 문제는 느끼지만 뾰족한 해결책도 없기 때문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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