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싸는 자세로 파도를 탑니다

칭찬이 아닌 나다움을 택한 순간

by 김나현 작가

'새벽 6시, 스랑안'

발리의 우기에는 주로 새벽에 서핑트립을 떠났다. 바다로 이동하기 전에, 전날 찍었던 영상을 살펴보며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출발하기 30분 전부터 부지런히 준비해 오피스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피드백을 받으면, 다른 크루들이 피드백을 받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나, 다리를 이렇게 하면 안 돼. 다리 이렇게."

몸소 시범을 보여주며 나의 똥 싼 자세를 고쳐주려는 인스트럭터의 몸짓에 귀를 기울였다. '푸시한 다음에 뒷발을 먼저 디딘 후 앞발을 가슴으로 가져오고, 천천히 일어날 것! 다리를 넓게 벌리지 말고, 허리를 펴고, 손은 자연스럽게!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오피스에 있는 거울 앞에서 배운 것을 복기하며 열심히 연습을 했다.



"오늘은 가는 바다는 스랑안이에요. 배 타고 라인업 장소까지 들어갈 거예요."

"배요?"

"걱정 말아요, 그렇게 깊지는 않아요. 괜찮을 거예요."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했지만 배를 타고 깊은 바다로 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오늘 나현 님은 1:1로 밀착마크 할 거니까, 정말 걱정 말아요.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 날씨가 맑아서 드론 띄우면 영상 예쁘게 찍힐 테니까 재밌게 타세요!"

그랬다. 그날은 내가 발리에 온 4일째 되는 날이었으며, 처음으로 서핑할 때 비가 오지 않은 날이었다.



이른 아침, 스랑안에 도착하자 수많은 서퍼들로 가득했다. 떠오르는 해와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오늘은 어떤 파도를 만날지 가슴이 뛰었다. 맑은 날이었기에 어느 날 보다 꼼꼼하게 선크림을 바르며 토인이 되어가는 사이, 덜 마른 슈트에서는 어제 내린 비 냄새와 바다의 짠내가 뒤섞여 풍겼다.



"자! 준비 다 되었으면 출발해 볼까요?"

매니저님의 말에 내 보드를 불끈 들어 올렸다. 해안가에서 우리가 탈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살짝 밀어 바닷물에 띄운 다음 보드를 하나씩 배 위에 올리고 바다의 바닥에 발을 딛고 배에 탔다. 그리고 더 이상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를 향해 배는 출발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고 덜 마른 슈트가 내 체온과 바람에 말라갈 때 즈음 보트는 시동을 껐다.

"여기서 내려볼게요. 조심조심 안전하게 서핑하시고, 특히 스랑안 귀신세트 조심하세요!"

귀신세트가 있다는 것은 파도가 작아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오면 큰 파도이기도 하고, 파도가 빠르게 부서지기 때문에 라이딩하는 시간이 예상보다 짧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의 바다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변화무쌍한 얼굴을 품고 있는 바다였다.



차근차근 사다리를 밟고 내려가며, 배 위에 올려두었던 몸을 바다에 담금질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사다리를 타고 배에서 내려오며 바다로 들어갈 때, 손에 잡고 있던 보트의 사다리를 놓고 보드 위에 온전히 내 몸을 의지했다. 보드 양옆을 잡고 정신을 집중하자, 두꺼운 스펀지 보드 아래에서 출렁이는 바다의 질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배를 타고 나왔다는 긴장감도 잠시,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서핑보드 하나에 몸을 의지해 바다 위에 둥둥 떠있으니, 이 거대한 존재 속에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작아지는 만큼 그동안 내 몸과 마음을 짓눌렀던 커다란 문제덩어리들도 같이 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내 존재가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느낀 순간,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아올랐다.




지난 바다와 달리, 첫 라인업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배가 대신해 주었다.(물론 두 번째부터는 스스로 라인업까지 가야 하지만 말이다.) 온전한 체력으로 첫 파도를 탈 수 있다는 기쁨을 안고 오늘 나를 태워줄 파도를 기다렸다.

"누나, 준비됐어?"

"네!"

"패들, 패들, 패들, 패드~~~~ 을 업!"

호기롭게 첫 파도에 올라탔다.

'오늘 드론 띄워서 영상 찍는다고 그랬지? 이왕이면 예쁘게 찍히면 좋겠는데! 지난번에 똥 싼 자세는 너무 웃겼잖아. 이왕이면 좀 멋진 자세로 영상에 찍혀보자. 그래야 sns에도 올릴 수 있지! 자세를 어떻게 해야 다리가 예뻤더라?'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중심을 잃고 휘청 거렸고 다리 모양을 확인하려다 그만 바로 바다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출발 전 오피스에서 자세를 연습할 때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었지만, 바다에는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누나, 엄청 좋은 파도! 왜 못타?"

"미안...., "

"괜찮아 누나, 다음 파도 타면 돼. 오케이? 무조건 앞에 봐야 돼. 보는대로 보드가 가. 아래 보면 빠져."

인스트럭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다음 파도를 탈 때도 '또 넘어지면 어쩌지? 왜 못 탔냐고 그러면 어떻게 하지? 예쁘게 영상 찍히고 싶은데...., ' 잡념이 들었고, 어김없이 넘어졌다. 좋은 파도를 골라주는데 왜 못 타냐는 인스트럭터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다음 파도는 꼭 잘 타보리라 다짐하며 힘차게 패들을 이어가고 예쁜 자세를 잡아보려 했지만 영락없이 물속으로 고꾸라지기를 반복했다.

'칭찬받고 싶은 만큼, 파도를 잘 타고 싶은 거지? 괜찮아. 우선 연습했던 건 다 잊어버려. 충분히 연습했고 네 몸에 이미 노력들이 녹아있어. 파도만 생각해. 멀리, 네가 가고 싶은 그 방향만 생각해. 그러면 자연스럽게 널 보드 위에 올라가 있을 거야. 믿어봐, 너를.'

한 톨의 의심의 여지까지 모두 털어내고, 오로지 바다 위에 떠 있는 내 보드와 그 위에서 파도를 밀어내며 패들링 하는 내 손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생각은 미뤄두고, 본능적으로 알맞은 패들링과 꼭 맞는 위치에 발을 올렸다.



.

.

.

.




'됐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파도가 나를 사뿐하게 밀어주었고, 나는 그 파도에게 화답하듯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바다 위를 달렸다. 보드는 내가 바라보는 쪽으로 향했고, 내가 어떤 자세인지 따위는 더이상 신경쓰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도 필요 없어지는 바다가 좋았다.



똥 싸는 자세면 어때! 내 식으로 나답게 그렇게 파도를 즐기면 그걸로 충분해!


오롯이 내 힘으로 보드를 움직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내가 칭찬받고 싶어 아등바등거렸던 '어린 나'를 꼭 감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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