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 148일 - 해 보지 않은 일을 해 보자.

by 글하루

나는 여전히 모른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그래도 나를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하는지 이것저것 해 보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시작일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나를 사랑했을까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저것이 나의 모습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생긴 얼굴 안에 나의 영혼이 들어 있고

저렇게 생긴 몸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구나 생각했다.

수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서 나를 보았는데 왜 오늘만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밤하늘에 갑자기 유성이 가로질러 지나간 것이다.


이유 없음. 이것이 이유였다고 하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 자신과 마주하니 나는 참 평범하였다.

어디에서나 보는 흔한 얼굴의 흔한 몸

저 안에 나란 사람이 들어 있다.

“아~아~”하고 소리를 내어 보았다.

내가 나를 통해 내는 소리를 들으니 내가 맞았다.

내 의지대로 정확히 내가 반응해서 소리를 내었다.

내가 나임을 확인하고는 안심하고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품을 얼굴에 듬뿍 발랐다.

내가 맞다는 확인 탓이었을까,

안심이 되어 평상시 보다 한껏 더 많이 화장품을 바른 듯하다

‘나를 확인하는 날들이 많으면 화장품값이 많이 들겠군’ 웃으며 생각했다.


길은 나서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를 사랑했었나?

나를 내가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평평한데 사실은 둥글다니,

일기예보에 저렇게 텅 비어 있는 하늘에서 내일이면 땅을 삼킬 듯이

많은 비를 품은 태풍이 올라온다니,

바로 옆에 있는 듯 전화를 했는데 사실은 땅끝마을 바다 건너 달리고 날아야 가는 곳이라는 게,

내가 나를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는 게 없고 수많은 사랑을 말하였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나에게는

단 한마디의 사랑의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게...

아는 게 아는 게 아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때로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듯….

매일 보는 내 얼굴도 눈감으면 가물가물 할 때가 있다.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듣고는 어색해서 몸을 움츠리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니

과연 나는 나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궁금도 하다.


사실 이 시작은 어젯밤의 포장마차 때문이다.

하얀 낮의 여백을 투명한 어둠이 촘촘히 채운 어스름 저녁에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했다.

가을로 넘어가는 이 좋은 밤에 길거리 포장마차만 한 곳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포장마차는 길에 있지 않고 건물로 들어와 버렸다.

세상은 좋아지지만 낭만은 나빠지고 있다.

두 다리 바퀴를 떼고는 사각형 공간 안에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실내’ 두 글자를 앞에 붙이고 실내포장마차가 되었다.

오고 가는 말보다 정겨운 것이 오고 가는 맑은 술잔이다.

샤워기 꼭지 따뜻한 물로는 내 몸을 씻고, 아담한 병 산뜻한 파란색 안에 들은 맑은 물 소주로는 내 영혼을 씻는다.

묻어 있는 것들은 찌들기 전에 씻어주어야 자리를 잡지 않는다. 그래서 마신다.


우리 둘 대화 사이를 끼어드는 날카로운 화살 하나가 있었다.

“헛살았어!”

우리는 입에 대었던 술잔을 동시에 가만히 떼어 내려놓고는 귀를 옆 테이블로 옮겼다.

귀가 가니 자연스레 살짝 눈도 따라갔다.

중년의 남자 둘은 우리처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모락모락 했을 식어가는 어묵탕국물, 쫄깃쫄깃 닭똥집과 맑은 소주 담긴 투명한 유리잔.

투명한 유리잔이라….. 왜 소주는 유리잔에 마시는 걸까? 안이 보여야 한다.

술 한잔 나눌 때는 서로에게 맑은 유리잔이 되어야 한다.

술은 이렇게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말에, 감정에, 사람에, 세상에, 그리고 나에게…

술잔을 기울이는 지금은 솔직하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젊은 우리가 시간을 달려 먼 훗날이면 딱 저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 자리에 우리가 앉으면 그림이 딱 그려진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날에서 멀어지다가 어느 날 미래의 날에 저렇게 만날 것이다.


친구와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잠시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을 교환하고 다시 우리의 대화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날 잠시 엿들은 대화는 유성처럼 내 머리를 스쳐서는 머리에 떨어져

커다란 자국을 짙게 남겼다.


“ 시간이 지났는데 내게 남은 게 하나도 없어,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면 회사와 사랑하는 가족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살았는데 정작 나를 위해 산적이 없더라고….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이 나인데, 정작 나에게 해준 건 생각이 나지를 않아, 잘 살았는데 잘 산 게 없어……”


나에 귀에 꽂혔던 이유는 아마도 나의 이야기여서 일 것이다.

요즘에 내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늘 조급하였고 바빴으며 미래에 살면서 지금을 놓쳤다.

일터로 가는 걸음걸음마다 어제의 느낌들을 밟고 밟으며 생각의 길을 걸음걸음 걸었다.


해보지 않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가장 사랑하는,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을 정작 나는 방치한 것이다.

마음은 있지만 어찌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이유로

나는 내가 나를 항시 기다려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이니까’하고 나는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 사랑했는지, 내 인생을 살아주는 나를 말이다.


나를 좋아하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내가 나를 말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기로, 그 방향으로 한걸음 내딛기로 했다.


나는 나에게 잊었던 말을 건넨다.

나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이제부터 나를 사랑할게, 그동안 수고했어, 나를 위해 살아줘서 고마워

진정으로 사랑해 볼게, 수고한 나, 고마운 나, 사랑해!”


많은 날의 나에게 하지 못한 말을 어느 날의 나에게 해 보았다.

참 어색한 한 마디.

"나를 사랑해!"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9화사랑은 어려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