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일 -
당신의 빈자리를 고독이 채우고
그 자리에서 글이 피어납니다.
글에서 당신을 만나고
또 그리워지면 다시 글로 이어집니다.
한 줄 두줄 늘어가다가
북북 지우고 때로는 얼룩도 생기지만
멈춘 적 없습니다.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그렇게 글자욱을 걷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당신을 씁니다.
당신이 글을 씁니다.
- 당신을 씁니다 -
글이 되는 사람이 있는 글쟁이는 그것으로 행복하다.
나는 글쟁이라는 말이 그냥 좋다.
쟁기로 글밭을 가꾸는 느낌을 준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글을 쓴다고 느끼곤 한다.
나에게 글을 마구 건네주는 어떤 사람이 있다.
마법과도 같은 사람.
작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나의 손을 빌려주는 사람이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누군가의 마음에 숟가락 하나 올리는 일인데.....
고독과 외로움은 비슷하지만 다른 면이 있다.
고독해도 외롭지 않지만, 외로운 사람은 고독할 수 없다.
고독은 거기에서 무언가 피어나지만, 외로움은 가진 것을 잃어버린다.
나는 고독을 좋아하지만, 외로움은 싫다.
고독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지만 무언가를 위해 잠시 벗어난 홀로서기이지만,
외로움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어서 홀로서 있는 것이다.
고독은 내일을 보지만, 외로움은 어제만 바라본다.
나는 고독하고 싶다. 외로움은 싫다.
외로움에는 글이 없다. 슬픔만 있을 뿐
고독은 사랑하는 사람이 배를 든든하게 꽉 채워주었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가슴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촉촉한 고독 속에서 글꽃이 싱싱하게 피는 법이다.
거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서 무릎에 노트를 올려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좋은 글을 필사했다.
너무 아름다운 글을 다른 종이 위에만 있게 하는 것은 실례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책위에서 나의 펜을 통해서 다시 종이 위에 써질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물건을 내 손에 얻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
물건 욕심보다는 글 욕심이 앞선다.
내 노트가 두둑해지면 가슴도 가득 차게 된다.
백화점에서 물건 쇼핑하는 것도 즐겁겠지만, 나에게는 글 쇼핑이 최고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옮겨서 쓰다 보면 어느새 나는 다른 글을 더하고 있다.
아름다운 글은 아름다운 글을 부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 속에는 누군가 있다.
그 느낌을 따라서 한 글자씩 한 줄씩 더하다 보면 어느새 빈 곳을 찾을 수 없게
하얗기만 했던 종이가 채워져 나간다.
글을 쓰면서도 신기하다.
처음에는 내가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바로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글을 준다는 것이다.
결국은 그 사람이 나를 통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사랑은 쓰다 보면 남는 것이다.
사랑을 주다 보면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