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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시인 Feb 28. 2024

왼쪽 손목의 이름

- 038 -

가슴에 새긴 것이 드러나면 문신이 된다.

새기는 게 아니라

이미 새겨진 것이다.


"저걸 왜 저기에 썼대?"

"아직 젊으니까 철이 없어서 그렇지."

"저러다가 혜어지면 어쩐다냐?"

"결혼하면 상관없잖아. 얼마나 사랑하면 그랬겠어."

저마다 생각을 장마철 폭포수 마냥 쏟느라 여념이 없었다.


20대 중후반의 커피숍 청년을 뒤로하고, 멀리 구석진 자리에 4명이 함께 앉았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어디로 증발했는지 관심은 1도 없고, 잘 생긴 청년의 왼쪽 손목에 새겨진 문신 얘기에 온통 빠져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하며 청년의 왼쪽 손목에 새겨진 이름을 보았다.

잘 생기면 눈에 띄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 손목에 새겨진 이름을 본 것도 문제다.


마른듯한 적당한 키에 조금은 날카로워 보일 수 있는 눈매, 오히려 매력적이다.

보디빌더는 아니지만 우리보다 두꺼운 가슴과 핏줄이 드러난 팔뚝, 아 샘난다.

거기에 성시경 닮은 달콤한 목소리까지, 이 짐승남 멋있다.

팔뚝에는 작은 장미 모양의 문신과 라틴어 같은 글귀, 그리고 왼쪽 손목 위 시계가 보이는 자리에 '이영은'이라는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커피와 음료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름에 대한 열띤 생각들을 쏟아 냈다.


지금도 사귀고 있을까?

헤어졌을까?

저렇게 문신을 새기고 있으면 만나고 있을 테지.

아마 여자도 남자의 이름을 똑같이 새기고 있지 않을까

사람일은 몰라. 이별했을지 몰라.

아직 젊어서 그럴거야. 애인은 문신으로 새기는게 아닌데...

그때는 영원한 사랑이지.

사랑도 변하는데...

상상의 영토는 이미 광개토대왕이었고, 세계를 정복했다.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테이블 위에서 이쪽저쪽으로 화살처럼 날아다녔다.

한 사람이 말을 끊었다.

"물어보면 되잖아."

"에이, 그래도 어떻게 물어봐."

"그래, 지금도 만나면 모를까, 혜어졌으면 얼마나 미안해."

영하 50도에서 뿌려진 뜨거운 물이 연기처럼 순간 얼어버리는 광경을 보듯이 모두 눈만 멀뚱거렸다.


"자 천 원씩 걷읍시다."

"왜?"

"궁금하면 천 원, 커피 사면서 물어볼라고."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다들 깨달음이 오더니 천 원씩 모았다.

뜨거운 질문을 식혀줄 시원한 아이스커피값이 모였다.

시원한 대답을 찾아 카운터로 걸어갔다.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에, 죄송한데 하나 물어봐도 돼요?"

시선이 살짝 왼쪽 손목으로 가는 걸 느낀 청년은 미소로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왼쪽 손목에 있는 여자분이 누구세요? 애인이세요?"

"아 예, 제 엄마 이름이에요. 제가 좀 사고를 많이 쳤는데 엄마 덕분에 사람 구실해서 돌아가시고 새겨 놓았어요."

"아, 그렇구나. 다들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요. 괜챦습니다. 많이들 물어보세요."


청년의 미소에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모두 이미 목이 카운터까지 늘어져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머님 이름이시랍니다. 예전에 사고를 많이 쳤는데 어머님 덕분에 사람구실한다고, 고마워서 새긴 거랍니다. 돌아가시면서 잊지 않으려고 새긴 거 같고..."

"아~"

모두들 똑같은 노래를 불렀다.


어머님의 이름으로 새겨진 이름의 무게는 얼마나 큰 사랑이었을까 잠시 생각했다.

살짝 내 왼쪽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보고 썼던가?

엄마의 이름에는 고마움과 살짝 눈물이 뒤따른다.

어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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