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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멍

* 인생은 불멍이야. 지금 멍 때리는 거지.

by 글하루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

나는 오늘

오늘 마시고

오늘 즐겁게

오늘 행복하게


- 김고은 배우가 소주를 따면서 한 말 -




"비 좀 맞으면 어때, 저녁에 예정대로 보자고."

토요일 저녁에 우리 집 옥상에서 진수형 부부와 바비큐파티를 하기로 1주일 전부터 약속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녁에 내리는 비가 문제였다.


만나기로 한 시간에 비가 온다고 일기 예보가 바뀐 것이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비를 맞으며 숯불에 삼겹살을 구울 수는 없었다.

약간의 처마와 파라솔이 있기는 하지만 비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그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얼마 전 수술을 해서 몸보양을 해야 하는 진수형 형수는

유난히 숯불에 구운 고기를 좋아했다.

숯불이 필요할 때면 바비큐장비와 떌감이 있는 우리 집 옥상이 제격이었다.

진수형 부부와 우리 부부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주말이면 우리 집 옥상에서 만났다.

우리는 장비가 있었고 진수형네는 솜씨가 있었다.


진수형 형수는 음식솜씨가 대장금 숙주급이다.

음식을 맛있게 해서 누가 맛있게 먹으면 행복감을 느끼는 형수는

우리에겐 단비였고 천사였다.

고기에 밑간을 하고 갖은 채소와 김치 밑반찬을 가지고 온다.

우리는 음료와 과일 약간의 술과 밥을 준비한다.

그래서 만나 옥상 테이블에 상을 펴면 상다리가 휘청한다.

늘 젓가락은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몰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우리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한 주 뒤로 연기하자니 아쉬웠다.

오늘이 아니면 행복은 1주일 뒤 찾아올 손님이었다.

그래서 결국 비가 오더라도 큰 비는 아닐 것이니 그냥 고기를 굽기로 했다.

고맙게도 우리의 기대를 알았는지 비는

일기예보대로 그 시간만 잠깐 흩뿌리고 지나갔다.


다음 주로 연기했다면 오늘의 행복도 다음 주로 연기되었을 것이다.

고기를 숯불에 구워 맛있게 먹고 불멍화로에 장작을 넣고

불멍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먹고 오늘 마시고 오늘 떠들고 오늘 즐겁고 행복했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

오늘이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오롯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오늘만, 오늘뿐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흘러갔고 내일은 오겠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소유의 전부는 오늘뿐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냈어도

지나간 시간은 가을에 수확하고 남은 속이 빈 쭉정이다.

속이 비어 쓸모가 없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나에게 오겠지만

다가올 시간은 아직 받지 못한 다음 해의 보너스다.

받을지 못 받을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라는 지갑에 들어 있는 지금뿐이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을 잘 사는 게 인생을 잘 사는 거니까

오늘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집중하고 함께 즐겁게 보내면 그만이다.


어려운 인생 쉽게 잘 사는 방법은 어쩌면 이리도 쉽다.

점쟁이에게 5만 원을 주고 물어봐도 이보다 좋은 답을 얻을 수 없다.

오늘이어야 하는 이유는 오늘을 살기 때문이다.


행복은 파랑새처럼 멀리 있지 않다.

조용필 님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가 떠오른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불멍 하기


불멍이 행복한 건 지금에 멍 때리기 때문이다.

불멍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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