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 한 장면.
할머니가 실망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밖에 할 수가 없어!”
딸이 격려하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에요 이 만큼이나 한 거예요…”
이곳은 ‘주문을 잊은 식당’, 오늘 오픈하는 날이다.
할머니는 딸의 도움을 받아 미리 주문받는 방법을 예행연습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치매가 있으셨다.
쉬운 주문조차 버거운 나이다.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휑하다.
총기는 사라지고 치매가 찾아와 주인행세를 한다.
이곳 주문을 잊은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분들은 모두 치매가 있으시다.
그래서 식당의 이름이 ‘주문을 잊은 식당’
주문을 하면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주문을 잊어서.
주문을 하면 다른 음식이 나온다. 주문을 잊어서.
주문을 하면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주문을 잊어서.
주문을 받고 돌아서 몇 걸음 걸어가면 잊는다.
짜장면을 주문하면 짬뽕을 가져다주고 짬뽕을 주문하면 탕수육이 나온다.
주문을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주문을 받아서 가시다가는 주문지를 받은 것조차 잊고는 다른 일을 하신다.
자꾸 주문하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할머니가 낙담하시자 딸이 할머니를 격려하고 있다.
지금 엄마와 딸의 모습은 어릴 적 딸과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가 딸에게 했던 말을 딸이 엄마에게 하고 있다.
똑같은 사랑은 방향이 바뀌어서 가고 있다.
딸은 어릴 적 받았던 사랑의 공을 다시 엄마에게 던져 주고 있다.
어느 프로그램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날 오픈식을 위해 이원복 셰프와 송은이가 와서 도와주고 있었다.
이원복 셰프는 주방에서 도와줄 사람을 엄마가 주시던 밥 고봉처럼 그득 데리고 와서 모두를 든든하게 했다.
이곳에는 원칙이 있다
그러려니 하고, 불평하지 말 것.
웬만하면 주는 대로 먹을 것.
여유 있게 대처할 것.
이곳은 ‘주문을 잊은 식당’이니까.
이곳은 음식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이해와 사랑을 맛보러 오는 곳이니까.
식당이 오픈하는 장면에 포옥 빠져서 나는 화면에 잠겨버렸다.
치매노인분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를 보는듯했다.
얼마 전, 엄마와 식당에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식당에 가시면 엄마는 한 숟가락의 밥을 덜어서 내 밥공기에 덜어 주신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라고.
"아유 엄마 드세요."
"아녀. 더 먹어."
신기하게도 그 한 숟가락의 밥은 딱 부족했을 내 배를 꽉 채워주었다.
이제는 엄마도 치매가 있으셔서 약을 드신다.
그나마 감사한 건 아직 심하지 않고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틀니를 하고 보청기를 끼고 안경을 쓰고 지팡이에 휠체어를 타신다.
나는 엄마의 젊음을 먹고 이만큼 커서 사람 구실을 한다.
요양원에 계셔서 가끔 찾아뵙지만 갈 때마다 왜 왔냐고 하신다.
또 엄마의 밥 한 숟가락이다.
엄마의 '이 정도'는 딸에겐 '이 만큼'이다.
같은 크기인데 다른 것은 사랑이 있어서 일 거다.
아무리 작은 것도 너무나 크게 만든다.
'이 정도' 와도 '이 만큼'이 된다.
사랑은 씨앗으로 와서 가슴에서 자라기 때문일까!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이자가 높다.
이 정도여도 이 만큼 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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