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본가에서 보내는 토요일
10/4 토요일
오랜만에 잠을 아주 잘 자고 일어났다. 어제는 옆집 놈이 집에 없었나 보다. 매우 조용했다.
그런데 깨기 전에 꿈을 꿨는데 꿈에서조차 나는 수험생이었다. 그리고 내가 올해 공부를 하면서 찐 살 때문에 은연중에 은근히(사실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보다.
꿈에서도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정신과 약 부작용으로 식욕이 더 좋아짐. 그렇지만 약 효과가 좋고 시험이 몇 달 안 남아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약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본가에서 몸무게를 재보니 너무 심각하다. 약을 추가한 이후로 9주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9주 만에 쪘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몸무게가 늘어났다. 아무리 약 효과가 좋다고 해도 이건 아닌거 같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병원에 가야겠다. 처음 겪는 부작용이라 당황스럽네. 몸무게를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다 건강까지 우려되는 상황인거 같은데.. 하…… 연휴가 너무 긴 것이 원망스럽다.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고 싶은데…
살도 살이고 나의 좋지 못한 체력도 걱정이다.
가끔 하는 긴 산책과 짧은 산책만으로는 체력이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유지 정도.
제발 마지막까지 내 체력이 잘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본가에 왔다.
강아지를 볼 수 있고, 엄마 밥을 먹을 수 있고, 내 침대에서 악몽 없이 편하게 잘 수 있어서 좋다. 본가에서 자면 중간에 깨지 않고, 꿈도 안 꾸고 잠을 잘 잔다. 수험생 신분이라는 것은 똑같으나 고시촌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긴장하나 보다. 본가에 올 때마다 먼 고향집에 온 기분이 든다. 물리적으로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자주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추석 때 학원 열람실 문을 닫는 날에는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그래도 추석인데 집에 와서 좀 쉬면서 고기를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단번에 계획을 수정했다.
학원 학생들 중에 본가에 가지 않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학원 일정 상 문을 닫는 날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학원 열람실을 개방하기 전날에 고시촌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냥 고시촌에 계속 있을걸 그랬나…
그래도 본가에서는 밥이라도 제대로 먹으면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
올해 유난히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너무 더워서 여름 내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큰 거 같다. 올해도 여름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공부를 제대로 못 한 날이 좀 있다. 나는 여름이 정말 싫다.
날이 선선해져서 좋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시험이 너무 코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다. 난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는데...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는 거 같다. 어차피 변호사시험이란 것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저 하루하루 학원 일정에 맞춰서 하루치 공부를 소화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그것만으로도 넘치게 많으니까.
3번째로 시험에 떨어졌을 때 거만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시험에 떨어질 수 있지?' 하는 생각. 그때 나랑 같이 스터디카페에서 밤늦도록 공부하던 사람도 그랬었다. 너는 너의 한계를 넘어서하고 있다고. 그럴 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이번에 떨어지면 아무 미련 없이 손 털고 나갈 수 있을 만큼 너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나의 실력이란 흩어진 파편과 같았다. 파편들을 잘 모으고 조립하고 엮었어야 했는데 하루하루 학원 진도를 따라가기에 벅찼다. 그만큼 기본기가 없었던 거 같다. 그때에 비해서 지금은 이해 못 하던 것들도 제법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어찌 됐든 느리지만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나 보다. 그럼 된 거다. 처음에는 자책과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누구는 비슷한 성적대에서 똑같이 학원 일정을 따라간 후에 극적인 성적 상승을 하여 합격을 하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했다. 아직도 그 답을 모르겠지만 그냥 사람마다 타이밍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는 착하게 살았는데... 도대체 왜 계속 불합격을 할까... 하며 하늘을 탓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그럴 때마다 계속 마음을 다잡는다. 하늘이 무슨 뜻이 있겠거니. 하면서. (솔직히 잘 모르겠음. 하늘의 뜻 따위… 이렇게 말하면 벌 받을지도 모른다는 죄의식이 드는 것조차 짜증이 날 지경이다.)
나의 성적은 정확히 계단식으로 올랐는데 이번에는 확 오를 타이밍이다. 제발 합격하고 싶다. 제발..
스터디윗미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는 세시생, 회시생들은 오늘도 공부를 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실 수험생들에게는 오늘은 그냥 평범한 일주일 중 하루일 뿐이다. 그들의 영상을 보니 집에 오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빡세게 하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상태인 거 같아 불안하다. 그래도 지난 몇 달간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공부를 했으니 오랜만에 내게 주는 진정한 ‘쉼’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래도 마음이 계속 불안해서 책을 폈다.
베란다 문을 열어놨는데 밖에서 왁자지껄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 건가?
부럽다. 저렇게 왁자지껄하게 수다 떨며 웃을 수 있다는 게. 나에겐 왜 저렇게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허락되지 않는 걸까? 지난 시간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슨 의미로 남을까.
어떤 날은 기분이 썩 좋았다가 어떤 날은 기분이 지하 258층까지 내려가는 요즘이다.
벌써 10월이고, 10월 모의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