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나라면 고오스 빵으로 점심을 때웠겠지
혼자 간단히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편의점에 들어왔다.
남자 대학생이 포켓몬 고오스초코케이크와 오렌지 주스를 먹으며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저 고오스빵은 우유랑 먹어야 제맛인데 음료 선택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샐러드 진열대 둘러보고 '갓성비'라고 쓰여있는 양배추 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양배추와 약간의 시리얼에 흑임자 소스를 곁들여 먹을 수 있어 맛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감동란 두 개 세트도 골랐다.
적절한 조합에 만족하며 계산대로 가는 도중, 유제품 코너에 가지런히 놓인 우유 푸딩이 눈에 들어왔다. 홋카이도산 우유푸딩이다. 오타루 여행에서 먹었던 진한 우유맛이 떠올랐다. 한국의 편의점에서 이런 것도 사 먹을 수 있다니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고오스 초코케이크까지는 부담스럽지만 우유푸딩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겠냐는 타협을 하며 푸딩 한 개를 샐러드 위에 올렸다.
계산대에서 점원이 바코드를 찍자 화면에 상품 가격이 떴다. 푸딩은 한 개에 4천9백 원이었다. 커피숍에서 먹는 것도 아닌데 눈이 동그래질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를 생각은 하지 않고 카드를 내밀었다. 유제품을 수입하는 과정은 유통비용이 높을 수도 있겠다고 납득했다.
학교 기숙사 1층에 위치한 편의점은 식당 기능을 대신할 만큼 많은 의자들이 깔려있다. 볕 좋은 창가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샐러드 뚜껑을 벗겨 흑임자 소스를 짜 넣으며, 아마도 30대였다면 저 옆자리 학생처럼 고오스 초코케익에 우유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을했다.
부드러운 초코케익을 입안 가득 집어넣고 혀로 누르면 폭신한 빵이 동그랗게 뭉쳐질 것이다. 그 상태에서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면 단 초코와 고소한 우유가 조화를 이룬 한층 풍부한 케이크 맛을 즐길 수가 있다.
상상의 맛은 아름다웠지만 그건 30대까지의 얘기고, 이제 마흔여섯의 나는 고오스 초코케익으로 점심을 때우지는 않는다.
요즘은 채소먼저, 그다음 단백질, 마지막으로 탄수화물 먹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 식습관이 요즘 대세다.
배고플 때 제일 먼저 쌀밥을 한 숟가락 푹 퍼 먹는다거나 빈 속에 과일 주스를 벌컥벌컥 마시면 혈당이 급히 치솟는다. 솟구친 혈당은 떨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 습관을 반복하는 것이 당뇨로 가는 지름길이다. 혈당이 급히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꼭 채소를 먼저 먹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나는 이미 혈압약과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뇨약까지 곁들일 수는 없다는 강한 의지를 다지며 '채소먼저'를 신앙처럼 믿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밀가루를 줄이고 채소를 많이 먹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피부도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처럼 고오스 초코케익을 점심으로 먹는 젊은이를 볼 때면 달콤한 밀가루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건강을 위해 식단 관리가 필요한 시기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 어떤 것 보다도, 아무거나 먹어도 피검사 수치가 정상 범위를 유지하는 것이 젊음이 주는 가장 큰 자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하상가에 전시된 옷을 입어보지 않고 사도 잘 맞던 시절을 떠올리며 날씬한 20대를 곁눈질로 볼 때보다, 초콜릿케이크를 한입 가득 집어넣는 학생이 부러울 때 지난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 강렬해지는 것이 우습다.
잃어버린 것들이 아쉬워 기운이 떨어질 때, 지금 가진 것들을 떠올려본다.
그때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고, 아주 약간 더 지혜로워진 것으로 젊음에 대한 질투를 상쇄시키려고 조금 치사하지만 마음은 넣고 빼는 계산을 하고 있다.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손에 쥔 것들을 훑어보는 것은 효과가 있다. 좀 치사하면 어떤가. 지금 당장 유쾌함을 선택하는 것은 내 자유다.
마흔여섯의 나는 오늘, 오천 원에 육박하는 우유푸딩을 다시 진열대로 가져다 놓지 않고 계산해 버렸고, 점심시간에 혼자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오전에는 자꾸 성가시게 일거리를 얹어주는 동료에게 화가 났다가도 그도 사정이 있겠지 하며 마음을 푸는 너그러움도 보여주었다.
지금의 나도 꽤 괜찮다구!
유치하지만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좋아하기 위해 스무 살의 나에게 잘난 척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