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부터, '책 읽어주는 언어치료사'라는 수식어를 담아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언어치료 현장에서 책을 읽어주는 활동은 아이들만을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출산 후 7개월만에 복귀한 나에게도 알게 모르게 충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출산 후, 근무했던 곳은 지역내 작은 종합사회복지관 소속 아동발달센터였다. 그 이전에는 석사 재학 중에 짧게 사설 치료실에서 근무한 경험 외에는 대부분 장애인복지관, 특수학교, 복지재단 소속 기관에서 아이들을 마주해왔다. 소위 말하는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을 마주해왔다가, '경도', '경계선'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아이들을 마주할 때는 두려운 마음이 컸다. 익숙함을 좋아하는 치료사에게도, 낯선 아이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불안감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 유치원 생활, 가정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초등학교 3학년 친구인데,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어른보다 더 많은 남자아이였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맞벌이 부부였기에, 아이와의 소통 수단의 역할을 스마트폰이 하고 있었다. 처음 책을 읽어주었던 날, 아이의 시큰둥한 반응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뭐 저런 유치한 그림책을 나에게 보여주는거지? 어디 한번 읽어줘보시지!' 이 말을 눈빛에서, 그리고 분위기에서 품기는 것만 같았다.
그 외에도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또래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위축된 아이들부터 변성기를 맞이한 청소년기 친구들까지. 40분 회기 시간 중, 5분 정도는 주로 게임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강화 활동을 하는데, 그 시간을 책으로 채우고자 다짐한 나의 계획을 떨리는 마음으로 매 순간 시도해보았다. 다행히, 양육자분들께서도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더 가르쳐 주세요' 라든지 '발음 연습을 더 시켜주세요'라고 요청하시는 분들은 안계셨다. 그 신뢰에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다.
아이들은 점점 치료사인 내가 가지고 오는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뚜벅이라 복지관 가는 언덕을 오르내리며 가곤 했는데, 그림책 몇 권을 들고 가는 길이 덥든지 춥든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기대하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어떤 책 읽어줄 거예요?"
"다음 책은 뭐예요?"
"이 책 엄마한테 사달라고 할 거예요."
아이들이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갔다. 스마트폰 세상도 재미있지만, 글자 세상도 나름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 안에서 24-36개월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도 많은 충전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이제 숏츠와 챗 gpt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미 ai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상을 만들고, 나보다 더 능숙하게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읽고, 쓰고, 또 읽어주는 치료사가 되고자 오늘도 그림책을 펼쳐본다.
몇 년 전까지, 이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전하고 싶었는데, 투고했던 출판사로부터 타겟이 적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거절 메일을 받았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종이책으로 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