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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기록

전시 <아라크넷> 인터뷰

by 김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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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25 사각지대 공모 주제와 본인의 작업에서 찾은 연결점이 있다면?


‘기술과 인간성의 경계’라는 주제는 영상을 시작한 이래로 평생을 고민하던 주제였습니다. 영상 기술은 어디까지 현실을 실체화하여야 하는가에서부터 영상 기술은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영향을 주고,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생각이 언제나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술은 우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발전을 이루면서 우리 생활 곳곳을 침투하고 확장해 나갈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술과 어떻게 공존을 해야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에 대한 물음을 이번 공모에서 고민하고 시각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미술 혹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영상팀장으로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지 8년 차가 되었던 작년에 영상을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담긴 영상을 제작하고, 이것을 통해 여러 사람과 소통을 하고 싶었어요. 이에 무작정 지인을 통해서 저와는 다른 소재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님을 소개 받았고,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고, 제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어요.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화하여 풀어내고, 다양한 작가님들과 소통을 했던 순간들이 좋았습니다. 첫 전시를 계기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Q. 작품의 주 재료 혹은 매체의 선택 방식


'영상’은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영상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고, 생각보다 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2년 전에는 유튜브가 유명할 때가 아니었고, 흔히 컴퓨터 그래픽, 영화에서 사용되는 CG 영역만 집중되어 있을 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영상이 폭발적으로 현실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다방면으로 확장되는 영상의 세계에 매료를 느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편집을 할 수 있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되었기에 사람들과의 거리감도 무척 좁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영상을 오래도록 탐구하여서 오히려 영상 매체가 지니고 있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단절과 이어짐’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게 했고, 이를 제가 오래도록 손에 쥐어온 영상 제작물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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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 작품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하지 않는' 상태를 시각화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감각은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나요?


매일 들여다보는 SNS의 일상화에서 많이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매일 겪고 있는 일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서 정말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내에서만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다양한 사람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한국에 있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를 만들 수도 있죠. 과거에 공간적 한계로 인해 아무리 애를 써도 100명 이상의 친구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지급은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과 사귈 수 있죠. SNS 팔로우 숫자는 끝없이 올릴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 안에서 진정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란 의문이 생겼습니다.

우리 지역 내에서 오랜 역사를 함께한 인간 관계는 오히려 ‘나’를 잘 아는 지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어요. ‘나’의 역사, ‘나’의 정체성, ‘나’의 성격을 잘 아는 지인들 대부분으로 이루어졌죠. 하지만 지금은 수십 만명, 수백 만명 팔로우들 중에서 ‘나’의 역사와, ‘나’의 성격, ‘나’ 의 정보를 아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요? 또한 ‘나’자체가 익명의 파도 속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하기도 합니다. 상대의 진정한 정체를 서로 모르기에 어디까지 나를 공개해도 되는가에 대한 불안함이 존재하는 거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에도 소통하지 않는’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Q. 작품 속 ‘단절된 개인’과 ‘이어진 집단’ 사이의 긴장은 어떻게 형상화 되나요?(시각적, 형식적)


작품 <모니터 키우기>에서는 이전 작품 <제3의 시선> 영상이 테라리움 안에서 상영됩니다. 테라리움은 이끼라는 생명력을 인간이 관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작은 공간이죠. 테라리움이라는 존재가 제게 독특한 소재로 다가왔습니다. 분재도 그러하고, 어쩌면 무한한 공간에서 더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생명을 관조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 아래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반면에 작은 공간에 담긴 생명이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삶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적, 아마 다들 학교에서 내 준 숙제로 ‘양파 키우기’와 ‘고구마 키우기’를 해보셨을 겁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죠. 어쩌면 우리의 뱃속으로 들어가거나, 또 다른 작물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을 컵에 꽂아두어서 집에서 관조하고 관찰하게 하잖아요. 그리고 사람의 삶 속에 들어와 ‘칭찬’과 ‘비난’ 이라는 행위로 어떻게 자라나는지 살펴보고요. 이것이 마치 하나의 생명이 테라리움과 작은 컵에서 자연과 단절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라는 또 다른 집단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기도 하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식물이 인간과 상호작용 하는 모습이 작품 속에 담기는 거죠. 그리고 이 행위 자체가 사회가 담고 있는 ‘관계의 모순’ 역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벽이의 방>은 제가 작성한 단편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타이포 비디오입니다. 소설은 ‘벽이’라는 인물이 밤마다 무의식 속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 잊고 싶은 기억, 창피한 기억을 편집한다는 내용인데, 이는 ‘개인이 집단과 이어지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집단에 속하고 싶으면서도, 집단에 속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양가적인 감정을 지니는 이유가 집단이 주는 압박감 때문입니다. 안정된 관계로 구축된 집단을 안정감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로 구축된 사회는 오히려 불안감과 압박감을 주죠. 또한 ‘성과’를 요구하고, ‘정상적인 기준 안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작품 속 벽이는 하얀 방에서 홀로 하루를 점검합니다. 인간은 집이라는 공간에 들어오면 결국 ‘단절된 개인’이 되지만 밖으로 나가면 다시 ‘이어진 집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Q. 정체성을 '연결된 타인' 속에서 발견한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독립적인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시나요?


두 가지 면 모두 정체성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이란 참 모호하면서도 무한히 확장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나’의 정체성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내가 몰랐던 모습을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알게되기도 하죠. 가령 사랑을 하는 경우에 ‘내가 이런 모습인지 몰랐어.’라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하잖아요. 이처럼 정체성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견되기도 하고 창조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모든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정의내려진다면 진정한 ‘나’를 잃기도 하죠. 나의 취향, 취미, 사고, 습관 같은 것들이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면 나는 빈껍데기가 되어버릴 겁니다.



Q. 디지털 환경에서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영상 매체를 통해 이러한 사유를 표현할 때, 어떤 형식적 요소나 기법에 집중하셨나요?


인간이 내가 지금 ‘실존’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어짐’의 확신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 확신은 안정감을 주고, 그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이어짐이 느슨합니다. 아주 가냘퍼서 금방이라도 뚝 끊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을 줍니다. 언제든 세상과 단절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재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위협하는 강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무엇이 ‘진실’이고 ‘실제’인가에 대한 논의도 끊이지 않고 있죠. 이 역시 인간이 이어짐으로 향해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에 대한 공방부터, AI기 술의 발전으로 이미지와 영상이 진실인가에 대한 공방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공방으로 사람들이 이어짐을 주저한다면 점점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이는 ‘존재’가 어디에서 설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의 기법은 전시 주제를 먼저 생각을 한 다음 선택을 하는 편입니다. 지난 전시의 경우 ‘정체성’에 대한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였는데요,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나서 ‘콜라주’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체성을 이리저리 편집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정체성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내 주관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죠. 그것이 마치 여러 조각들을 한 곳에 꿰매거나 붙인 콜라주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래서 콜라주 방식으로 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함께 기획하게 된 민지님과 ‘기술과 인간성의 경계’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QR코드’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아라크네’에 대한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자연스럽게 ‘거미줄’을 연상하게 되었고,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거미의 선을 텍스트로 표현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으로 시작된 거미줄이 점차 형태를 만들어 나가듯이, 영상 속에서 점과 선으로 시작된 텍스트들이 점차 하나의 형태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제작하였습니다.



Q. 앞으로의 작업 방향 혹은 관객과 나누고 싶은 질문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계속해서 관객과 소통을 하는 작업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관객이 뒤를 돌았을 때 여운을 느끼고, 이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릴 수 있도록이요. 작품의 주제가 ‘단절과 이어짐’에 초점이 있는 만큼 개인이 느끼는 단절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이 단절감이 이어짐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 탐구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어떤 지점에서 단절감을 느낄까요?, 이 단절감은 해소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단절에서 이어짐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이어짐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하나요?, 단절과 이어짐의 상호 작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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