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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건넨 말 ㅣ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씩 웃었어

by back배경ground
용한이가 나보다 두 달쯤 늦게 갔을 거야
내가 유월에 입대했으니 팔월이었겠네
입대 전 기념 여행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추운 겨울방학이었으니 그게 아니었군​

이박삼일 여행을 가기로 작정을 하고서​
선택했던 목적지는 대구와 부산이었어
그런데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서
책장에 꽂혀있던 지리부도를 찢어 갔어​

반의 반의 반장 정도 됐던 대구 지도에는
대구역과 경북대학교가 있었던 것 같아
지도를 보며 경북대학교를 향해 걸었어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서 잤지

대구 사는 용한이 친구가 점심 사준대서
또 지도를 들여다보며 동성로까지 갔어
버스 탈만한 주머니 형편도 아니었지만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몰랐어

친구의 친구에게 비빔만두를 얻어먹고
저녁을 먹으러 계명대를 향해 또 걸었어
어둑어둑했던 캠퍼스가 어렴풋 생각나
그리고 부산에서도 그렇게 돌아다녔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무대뽀 여행이라
저기요 여기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가는 사람 붙잡고 얼마나 물었는지 몰라
거리에서 물어보던 일이 흔한 시대였지

화장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툭 건넨 말이
이렇게 옛날 기억을 소환시킬 줄 몰랐네
낯선 사람이 말을 건 게 너무 오랜만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씩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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